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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튀르키예에 건설한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1915 대교’.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한국 기업이 튀르키예에 건설한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1915 대교’.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한국 기업이 건설한 보스포루스의 세 번째 다리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한국 기업이 건설한 보스포루스의 세 번째 다리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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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는 유라시아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동적인 제조업 기반이 있음에도 주요 교역국과 구조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무역 불균형은 튀르키예 제조업이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튀르키예에서 완제품을 생산한 뒤 수출하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재수출이므로 교역 불균형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수입관세 부과 같은 단기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이다. 튀르키예에는 포드·피아트·르노·도요타 등 다수의 세계적인 오이엠(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자동차 제조업체가 이즈미트, 사카리아, 부르사 등을 중심으로 생산 거점을 운영한다. 이들 기업이 튀르키예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주로 유럽과 중동으로 수출된다. 이들 다국적 OEM 기업의 부품 현지조달률은 45~60% 수준이며, 나머지 40~55%는 제3국에서 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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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불균형 해소 노력

튀르키예는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활발히 교역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에서는 수입 비중이 더욱 높게 나타난다. 2024년 기준 일본과의 총교역액은 55억달러로, 이 중 수입이 47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튀르키예의 최대 수입국으로 2024년 수입액이 449억달러에 이르지만, 수출은 34억달러에 불과해 튀르키예의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꼽힌다.

대만과의 교역 규모는 17억달러이며, 이 중 수입이 15억달러를 차지한다. 대만은 전자집적회로와 머시닝센터(컴퓨터수치제어와 자동공구교환 기능을 갖춘 고정밀 공작기계) 등 튀르키예 산업에 필수적인 부품과 장비를 공급하는 주요 파트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의 주요 천연가스 공급국으로, 2024년 수입액이 440억달러에 달해 무역수지 적자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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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는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을 통해 수출을 늘리려 노력한다. 특히 영국과는 흑자에도 불구하고(2024년 약 80억달러 흑자) 양국 교역을 확대하기 위한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FTA 협상 노력은 단기적인 무역수지 개선뿐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의지를 보여준다.

튀르키예는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무역수지 불균형을 넘어설 고유의 전략적 장점들을 갖추고 있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관세동맹을 체결해 유럽 시장과 경제적으로 가깝다. 또한 북쪽은 러시아, 동쪽은 캅카스, 남쪽은 중동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교차로에 있다. 보스포루스해협과 다르다넬스해협이라는 교통·물류의 요충지를 품고 있다.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 등 천연가스 생산국과 유럽연합(EU) 등 소비국 사이에서 천연가스 허브로서의 잠재력이 있다. 인구는 8500만 명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달러를 넘어서는 규모와 구매력이 있는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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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전기자동차산업과 방위산업에 초점을 맞춰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러 국가와 기술협력 및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발전시설, 도로, 교량, 터널 등 규모 있는 인프라 건설 수요가 꾸준히 있는데 이는 주로 민관협력(PPP) 형태로 추진한다.

많은 국가가 튀르키예의 강점을 활용해 교역형 방산 협력, 대규모 인프라 건설, 첨단기술 협력 등으로 튀르키예의 성장과 동시에 자국의 산업 발전도 꾀하는 윈윈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교역형 방산 협력은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에 튀르키예가 강점을 보유한 방산 장비를 공급하는 형태의 협력이다. 튀르키예의 방산 기업 STM은 2024년 말레이시아 해군과 전투함 3척 공급 계약을 했다. 이 전투함은 길이 약 100m, 배수량 2500톤(t), 최고 속도 26노트로 헬리콥터 착륙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또한 2025년 8월 일본 방위대신의 튀르키예 방문을 계기로 일본도 튀르키예의 무인기와 휘르제트(Hürjet) 제트훈련기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현재 사용 중인 200기 규모의 T-4 훈련기는 노후돼 교체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튀르키예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유로파이터는 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개발한 전투기로, 수출을 하려면 4개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에어버스·BAE시스템스·레오나르도가 제조사로 참여하며, 특히 영국은 이번 사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국 내 노동조합들은 신규 수주가 없을 경우 일부 BAE시스템스의 최종 조립 라인이 2030년대에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영국 정부와 산업계의 관심이 크다. 영국은 튀르키예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몇 안 되는 유럽 국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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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계 최장 현수교 건설

인프라 건설 분야에서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의 참여가 활발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024년 10월 튀르키예에서 열린 국제도로연맹(IRF) 세계대회 영상 메시지에서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와 ‘차나칼레 1915 대교’가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이 두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는 모두 한국 기업이 건설에 참여해 만들어낸 성과이며, 이스탄불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해저로 연결하는 유라시아터널도 우리 기업이 참여한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기업 IHI인프라시스템은 이즈미트만의 ‘오스만가지 대교’(Osmangazi Bridge) 건설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기업들도 주요 교량 건설에 참여했다. 튀르키예 최초의 아쿠유 원자력발전소는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이 건설 중이다. 튀르키예는 두 번째 시노프 원전에 한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인프라 협력의 또 다른 축으로, 일본은 튀르키예와 함께 전후 재건 사업이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등에 제3국 공동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2023년 이스탄불에서는 튀르키예·우크라이나·일본 비즈니스 포럼이 열려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첨단기술 협력은 주로 전기차산업과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중국의 비야디(BYD)와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야디는 연간 15만 대 생산 규모의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차는 2026년부터 튀르키예에서 전기차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편, 한국에서 튀르키예로의 전기차 수출액은 2024년 4억2천만달러로, 전년 대비 344% 급증했다.

2025년 7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IDEF)에 튀르키예의 방산 장비가 전시돼 있다.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2025년 7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IDEF)에 튀르키예의 방산 장비가 전시돼 있다.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제공

방산 분야에서는 바이카르가 이탈리아 기업 피아조 에어로스페이스를 인수해 엔진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3월에는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와도 무인기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2025년 7월에는 국제방위산업전시회(IDEF)를 계기로 대한항공과도 무인기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튀르키예항공우주산업(TAI)은 말레이시아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현지 엔지니어 1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생산 중인 자국 전차 ‘알타이’와 관련해서는 다수의 한국 기업이 현수장치, 파워팩, 방탄장갑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이는 한국의 기술력과 튀르키예의 제조 역량을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2025년 7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튀르키예 기업 아셀산과 총성 탐지 시스템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육상 방산 부문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투자 진출 분야와 관련해서는 2024년 기준 튀르키예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상위 10대 협력국에 중국(투자액 기준 2위)과 일본(9위)이 포함돼 있다. 특히 소재산업 분야에서는 일본의 금속소재 생산기업 도요코한이 튀르키예의 철강기업 토시알리홀딩(Tosyali Holding)과 합작해 주석도금강판 등을 생산한다. 한국의 포스코는 튀르키예의 대기업 키바르홀딩과 협력해 스테인리스 생산 법인인 포스코아산TST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대만의 특수강 생산기업 윈창실업(YC Inox)도 튀르키예 게브제에 공장을 세워 제조 및 물류 허브로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유사한 협력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기차·원전 투자 확대 필요

튀르키예와 이탈리아, 영국, 일본, 대만 등이 보여주는 협력 모델은 한국-튀르키예 협력 발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들 국가는 전통 제조업 및 인프라 협력을 넘어 첨단 항공산업 및 방위산업, 그리고 고부가가치 부품 공급망에서의 기술 협력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국도 튀르키예와의 협력을 전기차와 원전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미래 산업 분야의 투자 확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전 등 현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한국의 기술력·비용·금융조달 역량의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알타이 전차 부품 공급 사례와 같이 한국의 기술력과 튀르키예의 제조 역량을 결합하는 기술 기반의 협력 모델을 통해 유럽연합과 중동으로 공동 진출하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산업 간 협력은 양국 모두에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다.

정윤서 KOTRA 이스탄불무역관 관장 jys0916@kotr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