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쓰이면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가 최근 재탄생됐다. 건축가 나상진의 대표작 중 하나.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쓰이면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가 최근 재탄생됐다. 건축가 나상진의 대표작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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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봄, 서울시 푸른도시국 최광빈 국장은 건축가 조성룡 성균관대 석좌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 군자동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건물로 쓰는 교양관 공사 때문이었다. 낡고 오래된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어도 될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도면을 받아본 조성룡 교수는 깜짝 놀랐다. 건물은 오랫동안 외피를 덧대고 고쳐 원형을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있었는데, 도면 속 원래 건물은 네 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에 지붕이 매달려 떠 있는 범상치 않은 디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인 결과 교양관 건물은 한국 건축 1세대 건축가였던 고 나상진(1923~1973·사진)의 작품이었다. 건물의 역사적 의미 또한 컸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 건물이었다. 조 교수는 이 건물을 살리자고 제안했고, 최 국장과 서울시는 고심 끝에 문화사적 의미를 고려해 건물의 원형을 복원·개축하기로 결정했다. 헐릴 뻔한 건물은 그렇게 되살아나게 됐다.

고 나상진
고 나상진

■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의 부활 어린이대공원은 원래 일제시대 1926년 이곳에 있던 순종의 비 순명 황후의 능을 옮기고 만든 한국 최초의 골프장이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골프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을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직전에 완공된 골프장 클럽하우스 건물은 준공 뒤 불과 1년 만에 공원 교양관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로 쓰기엔 너무 크고 넓어 나머지 공간은 공룡전시회 등 이벤트 장소로 주로 쓰이느라 외관이 덕지덕지 덧댄 부분들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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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최춘웅 고려대 교수와 함께 기본 설계를 맡아 건물을 살리면서 관리동으로 쓸 수 있는 해법을 뽑아냈다. 껍데기를 모두 걷어내고 구조를 보강하면서 건물 내부에 관리동 건물을 새로 짓는, ‘건물 안의 건물’로 고치는 것이었다. 지상 3층 콘크리트 기둥 구조는 그대로 살리고, 내부 시멘트 벽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변형된 모습 그대로 놔두고, 그 안에 사무공간을 새로 지었다. 외부로 돌출된 구조물 사이에는 나무를 심고, 안전도가 떨어지는 원형 경사 진입로는 화단으로 바꿨다. 건물 외부 공간은 이제 시민들이 쉬거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쉼터와 전망대로 조성됐다.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인 한강 선유도 공원을 설계한 조성룡 교수는 이 건물도 원 건물을 다시 활용하면서 구조의 일부를 덜어내는 대신 자연을 건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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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군자동 어린이대공원은 한국 최초의 골프장 자리였다. 1930년 영친왕이 당시 군자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
서울 군자동 어린이대공원은 한국 최초의 골프장 자리였다. 1930년 영친왕이 당시 군자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


건물 이름은 공모를 통해 ‘꿈마루’로 정해졌고, 최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음악분수 바로 뒤, 전에는 눈길조차 끌지 못해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던 건물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공원 내의 랜드마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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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건축가에 다시 눈길을 꿈마루 공사는 건축가 나상진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도 됐다. 1970~80년대 한국 건축을 휩쓴 두 스타 건축가 김중업(1922~88)과 김수근(1931~86)보다 앞선 세대의 대표적 건축가였던 나상진은 50~70년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건축가였다. 그가 특별한 것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건축가들, 그리고 명문대 출신들이 장악한 건축계에서 대학 학력도 없이 자수성가한 토종 건축가였던 점이다. 김제 출신으로 전주공립공업보습학교를 나온 그는 일본 건축회사 가지마쿠미에 들어가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았고, 해방 이후 건축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 시절 주요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많이 설계해 정치적 건축가란 평도 들었지만 남대문 앞 그랜드호텔, 새나라자동차, 경기도청사, 대구 파티마병원, 명동 한일관, 중앙정보부 본청사 등 150여개 건물을 설계했고, 지금도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아 있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디자인 완성도와 과감한 콘크리트 공법 면에서 수준이 높은 작품이자, 사라져가는 한국 근현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나상진이란 이름은 작고 이후로는 건축계 내에서도 잊혀졌다. 자료 보존과 역사 기록에 미흡한 건축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계기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되면서 꿈마루 2층 라운지와 3층 북카페에서 나상진과 꿈마루 건물의 건축적 의미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재경 건축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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