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동의 동서횡단 /
중국 민간조사기관 후룬바이푸(胡潤百富)의 지난 13일 발표에 따르면, 지금 중국엔 10억달러 이상의 자산가가 130명이다. 10억달러면 지금 환율로 1조원이 넘는다. 지난해엔 그 수가 101명이었고 5년 전인 2004년에는 불과 3명, 그리고 그 전해인 2003년까지만 해도 한 명도 없었다. 중국이란 나라의 놀라운 국부 팽창속도를 보여주는 기록일 수도 있고 부의 급속한 집중, 양극화를 드러내는 수치일 수도 있다.
1000명의 갑부 랭킹에서 40살 이하 젊은층이 10%에 가까운 94명이나 되고, 상위 10명 가운데 7명이 올해 새로 등장한 인물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국 자본주의의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거기서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는 도시화와 수출과 자동차다. 10대 부호 가운데 8명이 부동산 재벌이고 랭킹 1위가 연료전지와 자동차를 만드는 비야디(BYD)그룹 총재 왕촨푸, 그리고 2위 장인 일가가 수출제품 포장지 등을 생산하는 제지회사를 운영한다.
올해 3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갑부 랭킹에서 10억달러 이상 자산보유자는 미국이 359명, 러시아가 32명, 인도 24명이었다. 후룬바이푸 발표를 그대로 적용하면, 중국 130명은 압도적 2위가 된다. 과두지배세력인 올리가르히(올리가키)들이 판치는 러시아나 극단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인도 같은 나라들에 유독 세계적 갑부들이 많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황당할 정도의 천문학적 부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소속된 국가나 사회의 수준이 황당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부자들이 늘어난다는 건 자랑스럽기는커녕 시쳇말로 ‘쪽팔리는’ 일일 수 있다.
후룬바이푸에 따르면, 10억달러 이상 억만장자의 실제 수는 그 몇 배나 되고, 150만달러가 넘는(17억원 이상) 중국인은 무려 82만5000명이나 된다. 중국공산당은 이름만 남았을 뿐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런 데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03위였던 왕촨푸가 1위로 뛰어오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미국 투자자 워런 버핏이다. 그가 리튬이온전지를 장착한 전기자동차를 개발한 비야디그룹 주식을 대거 매입해 10% 대주주가 되면서 비야디 주가가 급등했고 27.8% 지분 소유자인 왕의 자산가치도 그만큼 껑충 뛰었다. 중국 억만장자들의 급증은 중국 인민보다는 세계의 자산계급이 더 환호작약할 호재일지 모른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에 무너졌지만, 냉전의 완전한 해체는 중국에서 초절정 억만장자들이 무더기로 등장하고 미국이 그들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 최근 몇 년간의 사건이 아닐까. 냉전체제에 기생했던 일본 자민당의 붕괴도 그에 따른 역사적 에피소드이고, 하토야마의 민주당 정권이 우애외교와 동아시아공동체를 얘기하는 것은 그 필연일지 모른다. 박정희 개발독재 성공신화는 냉전과 미국이 주도한 그 냉전에 기댄 일본 자민당에 또 기댄 다중적 의존체제의 소산이라는 성격이 짙다.
일본은 이제 낡은 냉전형 자민당 체제를 버리고 새 길 찾기에 나섰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냉전형·과거회귀형 박정희 신드롬이 판을 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