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기계적인 문제풀이와 반복 학습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또 자기 생각대로 살아보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기력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알람이 울리는 시계를 끄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청년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어릴 때부터 기계적인 문제풀이와 반복 학습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또 자기 생각대로 살아보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기력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알람이 울리는 시계를 끄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청년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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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씨는 대학생으로 현재 휴학 중입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하다 현재는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는 정오가 되어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깨어나서도 주로 침대에서 누워 스마트폰으로 2~3분짜리 쇼츠 영상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다음 학기가 다가오지만 다시 휴학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대학교와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 과에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학과에서 마음잡고 공부해보려고도 했지만 수업도 재미없고 자신이 이걸 왜 들어야 하는지 의문인데다 도무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선행 교육을 했습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수학은 공식을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 풀이가 틀리면 맞을 때까지 풀이를 반복했습니다. 어린 민수씨는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수학 문제를 보면 두려움이 생겼고 틀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민수씨는 학원에 다니면서 두려움이 줄어들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이 강의하는 내용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하면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친절했고 민수씨에게 매우 자세하게 문제를 푸는 요령과 팁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방향을 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학원에서는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수씨는 열심히 강의를 듣고 강의에 따라서 문제 풀이 방법을 익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방법대로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지만 아쉽게도 원하는 대학과 과에 입학하지는 못했고 배치표상으로 그보다 조금 아래 성적의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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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간 민수씨는 교수님의 수업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교수님은 문제 풀이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어떤 주제에 대해 학생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를 바랐습니다. 민수씨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생각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런 민수씨에게 갑자기 전혀 다른 방법의 수업을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민수씨는 부모님께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다시 여쭤보았습니다. 부모님은 그에게 공무원 시험을 권유했고, 민수씨 또한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민수씨가 책상에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멍하게 시간만 지나갔습니다. 시험 일자가 다가오자 이유 없는 무기력감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공무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생각했지만, 민수씨의 인생에 대해 답을 주는 학원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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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씨는 무기력감과 막연한 불안감에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그는 오랜 무기력감이 특징적이었습니다. 무기력감이 심해지면서 생각의 속도가 매우 느려졌습니다. 지능지수(IQ) 검사 결과 90으로 하위 30%로 나타났습니다. 민수씨의 언어 아이큐는 최상위 수준인 130이었지만 생각의 속도가 느려진 탓에 전체적인 아이큐는 낮게 평가되었습니다. 생각이 느리다 보니까 문장을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특히 긴 문장의 경우에는 읽다가 앞에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이는 만성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감과 생각의 속도 저하로 나타난 증상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민수씨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제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문제의 답을 민수씨에게 지시해줄 학원 강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을 대학에서도 어디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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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뭘 좋아하니?’(What are your interests?) ‘나는 ○○을 좋아해.’(I am interested in ○○)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우는 문장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에 가면 학생들에게 처음 물어보는 것이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입니다. 하버드대학 아동발달센터(Center on the developing child)에서 제시한 아동 두뇌 발달을 위한 방법 중에서 첫번째가 아이가 가진 관심과 흥미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반응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긴장 호르몬이 감소하고 전두엽이 발달해서 학업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면 아이들에게 왜 수학이 중요한지 이해시키고 그것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정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나이에 문제 풀이와 반복 학습을 한다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하며 느낄 수 있었던 흥미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동에게는 트라우마가 되고 성인기가 되어서는 무기력감과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민수씨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사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셰프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자 지긋지긋한 시험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민수씨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는 요리 학원에 다니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하는 행위에 대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제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