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사라 아메드 지음, 이경미 옮김/동녘·2만2000원
여자라는 문제/재키 플레밍 글 그림, 노지양 옮김/책세상·1만2000원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몹시 고되고 피곤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알아챈” 죄로, 시도 때도 없이 ‘분위기를 깨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의 저자 사라 아메드는 “때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겪는 것보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더 피곤한 일인 것 같다”고 토로한다.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한 아메드는 여성이자 유색인이자 이주민으로서 차별과 소외를 온몸으로 겪었고, 페미니즘과 비평적 인종 이론을 필생의 연구과제로 삼는 학자이자 저술가, 활동가로 살아왔다. 이 책은 그녀가 런던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내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여학생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2013년부터 3년간 집필한 것으로,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블로그로 소통하며 완성했다. 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사례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빼곡한 것은 그 덕분인데, 특히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억압의 실체를 알아채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을 그린 1부 ‘페미니스트 되기’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집단적 페미니스트의 역사로 연결 짓는 저자의 능란한 솜씨가 빛난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첫 단계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몸’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조깅하던 저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간 남자, 학교 앞 바바리맨, 휘파람을 불며 위협하는 상급생들…. 반복되는 경험으로 몸은 움츠러든다. 소녀들은 ‘위험을 재빨리 인지하고 스스로를 돌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뭔가 일이 벌어지면 그건 예방하지 못한 그녀들의 탓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폭력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주눅들지 않으며 부당하게 축소된 공간을 스스로 확장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성차별적 문화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이에 동참하면 ‘집단의 인정’이라는 보상마저 주어지는 현실에서, 페미니스트는 자의식 강한 골칫거리이며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훈계를 일삼는 ‘분위기 깨는 자’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저자는 “기꺼이 분위기를 깨는 페미니스트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것이 불행을 야기한다면 기꺼이 불행을 촉발할 것이며, 행복이 폭력을 모른 척 눈감는 것이라면 그 행복을 거절할 것”이라 일갈한다. 그리고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에게 예비된,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길에 반드시 챙겨야 할 ‘생존 키트’를 알려준다.
아메드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생존 키트는 바로 ‘페미니즘 책’인데, 재키 플레밍의 그림책 <여자라는 문제>를 이 키트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겠다.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그림책은 17~20세기를 주름잡은 과학자와 예술가, 사상가를 비롯한 당대 사람들이 여성을 ‘덩치만 큰 어린아이’(쇼펜하우어)로 낮잡아보며 집안에 가두려 골몰한 정황을 100여 컷의 익살스런 그림과 유머 넘치는 글로 폭로한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면서 “위대한 남자들의 목록을 적고 그 옆에 위대한 여자들의 목록을 적으면 남자들이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위대한 남자들의 명단을 공들여 작성 중인 다윈과 그를 째려보며 자수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삽화로 6천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역사를 탐구했으되 교육이나 예술활동에서 철저히 소외된 눈앞의 여성의 역사에는 무지했던 천재 과학자를 풍자한다. 나아가 그간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무시당한 ‘최초의’ 여성들을 호명한다. 흑인 여성 최초로 시집을 출간한 필리스 위틀리, 근대 과학사 최초의 여성 과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 일본 최초의 여성의사 오카미 교코, 홀로 말을 타고 미국 북부를 여행한 낸 에스핀월…. 다윈은 결코 알지 못했을 위대한 여성들의 명단을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더 많이 구해내야 한다”고, 촌철살인의 그림체로 웅변한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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