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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억압과 시장화를 넘어-한국사회 연대 영역의 구조 변화
강수택 지음/국립경상대학교출판부·1만9000원

지난 11월, 전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촛불시위를 벌였다. 이 놀라운 시민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동력이 있을까? 경상대 강수택 교수(사회학)는 <연대의 억압과 시장화를 넘어>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며 답을 찾는다.

강 교수가 주목하는 근대적 성격의 첫 연대는 ‘독립협회’ 활동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건설하기 위한 고급관료 모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관료들이 탈퇴한 뒤 많은 민중이 결합했고, 전국 각지에 지회가 설치되며 강력한 사회단체로 발전했다. 회원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근대적 인간관을 확산시키며 연대의 토대를 쌓아갔다. 공익을 추구하는 자발적 결사체로서 신분을 뛰어넘는 연대적 참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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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은 일제강점기 3·1운동으로 이어진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서로 다른 종교단체 지도자들의 연대로 계획되고 실천한 이 운동은 학생, 상인, 농민, 노동자, 심지어 관료들까지 전국 200만명 이상의 남녀노소가 참가했다. 신분, 성, 연령의 차이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이 모든 구분을 뛰어넘은 연대는 대한민국 제헌헌법으로 뜻이 계승되었고, 지금까지 헌법 전문에 그 정신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연대를 가능케 한 시민사회 영역은 일제와 이승만 정부, 그리고 군사정권에 의해 가혹하게 짓밟혔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제3공화국을 출범시키기 위해 3·1 운동의 정신이 녹아있는 헌법까지 개정했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도록 했다.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며 연대하는 에너지의 분출을 혼란으로 규정하고 이를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많은 관변단체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시민연대의 영역을 파괴하기도 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민들의 저항이다. 4·19 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등의 형태로 쉼 없이 자유와 평등의 연대를 이룩한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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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에도 연대를 끊으려는 자본과 권력의 시도는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때 관변단체에 주는 지원금이 확대됐고, 국정원의 기능도 강화해 민간 사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공익성이 중요한 교육, 의료, 언론 분야에까지 시장 경쟁원리가 도입돼 시장주의적 압박까지 이뤄지고 있다. 강 교수는 특별히 종합편성채널(종편) 등장에 주목한다. “종편 중에는 지나치게 친기업적 입장 때문에 노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식으로 공공영역을 심하게 왜곡시키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동자 연대뿐 아니라 일반 시민사회의 연대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련 속에서도 시민사회는 연대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2016년 겨울, 우리가 목격하는 ‘촛불 연대’는 마치 화산폭발과 같이 바로 그 에너지가 분출하는 장면이라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근대 이후 한국의 역사는 ‘연대에 의한 연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음성원 기자 e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