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 세상은 왜 나쁜 사람들이 늘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나는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속에서 답을 찾았다. 예전에는 너무 비장해서 불편한 이야기, 주인공이 견디고 있는 참혹한 고통이 안쓰러워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이토록 고통받는가’라는 물음을 안고 다시 읽으니 비로소 이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가장 윤리적인 존재가 가장 참혹하게 고통받는 이 세상의 은유다. 진실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은 ‘미리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멋진 뜻을 품고 있다. 그는 남보다 먼저 생각하여 먼저 깨어난 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빛이 될 진실을 미리 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자다.
모든 것을 남보다 먼저 아는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인간에게 불(火)은 물론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즉 예술과 학문을 창조할 수 있는 힘까지 주었기 때문에 제우스로부터 받을 고통까지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새살이 돋아나는 간, 쉴 새 없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 그 어떤 힘으로도 끊을 수 없는 쇠사슬. 그는 자신의 처참한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인간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그는 불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바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할 수 있는 이성이었다. 이성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함으로써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성의 밑바닥에는 공정함을 향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덜 고통스럽게, 고통받는 이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게, 자신이 가진 힘을 남용하지 않고 좀 더 좋은 쪽으로 쓸 줄 아는, 삶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정함.
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고통을 받는가. 왜 세상은 거짓된 사람들이 훨씬 자주, 그것도 화끈하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까. 세상은 아이들에게 위험한 진실보다는 안전한 거짓의 편에 서라고 충동질하는 것일까. 제우스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인간을 원했고, 프로메테우스는 힘들더라도 제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원했다. 제우스는 모든 독재자의 은유이며, 프로메테우스는 자유의지를 지니고 신에게조차 반항하며 묵묵히 진실을 위해 싸우는 혁명가의 은유가 아닐까. 제우스는 인간을 제 입맛대로 길들여 지배하고 싶어했고, 프로메테우스는 등불 하나 없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인간을 동등한 인격으로서 사랑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프로메테우스만큼이나 소중한 인물들이 있다. 바로 코러스다. 그녀들은 속삭인다. 프로메테우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우리는 아늑한 신들의 세상을 버리고 이 참혹한 형극의 땅으로 내려왔다고. 지금 당장 프로메테우스가 될 능력이 없는 나는 바로 이런 코러스가 되고 싶다. 진실의 편에 서서 진실이 외롭지 않게 진실을 위해 싸우는 프로메테우스의 어깨를 뒤에서 가만히 쓸어주는. 진실의 가녀린 목소리가 세상 속으로 더 잘 울려퍼질 수 있도록, 고독한 진실의 따스한 울림통이 되고 싶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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