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폭력은 불에 덴 상처와 닮았다. 육체적 고통이 사라졌어도 흉터를 보면 그때의 아픔이 기억나는 정신적 상처는 잘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알몸졸업식 등 엽기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왜 학원폭력은 갈수록 강도가 심해질까?
<주먹을 꼭 써야 할까?>는 이런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주는 책이다. ‘시련과 성장’이라는 청소년문학의 형식에 전문적인 심리학적 내용을 녹여낸 이른바 ‘지성소설’이다. 지성소설은 철학·심리학·물리학 등 전문적인 내용을 소설을 이용해 풀어가는 소설로, 이 책은 ‘중학교 3학년 싸움짱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를 뼈대로 삼고 사건의 고비고비를 심리학적 설명으로 알기 쉽게 풀어나간다.
종훈이는 ‘짱’의 상징인 투명 비닐가방에 볼펜 두 자루만을 들고 다닌다. 학교에서 아이들 위에 군림하면서 언젠가 영화 같은 일을 한판 벌여보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문제아다. 어느 날 아침 종훈이는 투명 비닐가방을 문제 삼는 방과후 교사인 태껸 사범에게 주먹을 날리다가 땅바닥에 메다꽂히고 가방을 빼앗긴다. 망신을 당한 종훈은 사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등학교 일진 선배들을 동원하려 하지만 선배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일단 타협할 요량으로 종훈이는 사범을 찾아갔다가 한 방에 사람을 때려눕히는 필살기를 알려주겠다는 말에 혹해 사범이 내준 몇가지 과제들에 도전한다.
종훈이 과제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깨닫는 내용을 읽다 보면 대학시절 소설가를 꿈꾸었다는 심리학 박사 지은이의 내공이 느껴진다. 심리학의 주요 이론을 사례와 함께 흥미롭게 가르쳐주는 베스트셀러 <스키너의 심리학 상자 열기>도 연상시킨다.

사범이 종훈에게 내는 과제는 뜻밖이고 이상한 것들이 많다. 사범은 먼저 종훈이에게 우스꽝스러운 손뜨개 옷을 입혀 시장을 돌게 한다. 모두가 자기를 우습게 볼 거라고 생각했던 종훈이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알고 놀란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사이먼스가 실시한 일명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재구성한 것이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농구선수들의 패스를 지켜보게 한 뒤 고릴라를 농구선수 뒤로 지나가게 해도 실험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자신만이 주인공인 무대 따위는 현실에는 없는데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심리상태를 꼬집는 실험이다. 종훈이가 일진은 일진에게 맞는 폭력성을 가져야 한다며 비닐가방에 집착하지만 이는 종훈이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책을 통해 종훈이가 가진 잘못된 가면은 결국 어른 사회의 폭력적 서열문화에서 나온 것임을 가르쳐준다. ‘1등만 기억하는’ 학교 문화에 반발해 학생들이 비공식적 서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또 아무런 롤모델이 없어 자기만의 가면조차 갖지 않는 학생들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성적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선망하면서도 배제되는 존재들이다. 결국 그들 내면에도 폭력성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아이들은 폭력에 둔감해지고 결국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폭력을 용인하는 폭력의 공범으로 전락한다.
책은 학원폭력에 대한 이런 쉽고 심도깊은 분석을 들려주면서 실제 지은이가 했던 임상 심리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종훈를 이끌어가는 사범의 태도처럼 자극하지 않고 청소년에게 다가가는 법이나 청소년의 마음을 여는 기술을 간접체험을 통해 배우기 좋을 듯하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그림 사계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