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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지난 1월2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지난 1월2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 말하고 정창조 쓰다 l 위즈덤하우스 l 1만9000원

‘출근길 지하철’이라는 제목과 띠지의 사진만으로도 책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사진 주인공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이끄는 지하철 투쟁을 다룬 책일 것이라는 짐작은 과연 틀리지 않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정창조 활동가가 박경석의 말을 입말투로 풀어낸 이 책은 지하철 탑승시위를 중심으로 장애인 권리 투쟁의 역사와 의미를 짚는다.

2021년 12월3일 아침 시작된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시위는 비난과 혐오를 부르는 한편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시위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불만을 초래한 것은 분명하지만, 박경석은 그것이 “비장애인 모두에게 선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2001년 1월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참사를 계기로 이어진 장애인 이동권 투쟁 결과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저상버스도 도입되었다(물론 아직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그 덕에 노인들과 임산부 등 약자들이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다. 책에서 박경석은 지하철을 가리켜 “노동력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라 부르는데, 그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것은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를 기반으로 한 문명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세상을 바꿀 희망을 심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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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탑승시위는 장애인 권리 투쟁의 일부일 뿐이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 운동, 나치의 장애인 학살 프로젝트와 오늘날 한국에서의 장애인 죽음의 메커니즘, 양당 중심 대의제 정치 비판과 ‘거리의 정치’가 지닌 의미, 보편적인 해방 투쟁과 장애인 투쟁 같은 부문 투쟁의 연대 등 다양한 주제들이 책을 이룬다. 책에는 2022년 8월 대구에서 2살 발달장애아동이 어머니에게 살해당하고 그 어머니 역시 자살한 사건을 비롯해 장애인 친족 살인 사건들이 아프게 나열되는데, “우리는 모두가 이 죽음들에 대해서 공범”이라고 박경석은 말한다. 장애인들과 그 가족이 충분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가 이런 죽음들을 낳았고, 그런 사회를 내버려둔 채 “그냥 살아가는 거가 그 자체로 이미 장애인들에 대한 이 사회의 테러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장연의 요구로 서울시가 2020년에 만들었다가 올해 없앤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달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 등 중증장애인들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홍보를 위해 피케팅을 하거나 노래하고 춤추는 등의 ‘노동’을 하고 보수를 받는 방식이었다. ‘권리생산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여기에서 나왔거니와, 금융투기 노동이나 대기업의 탈세를 돕는 변호,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노동에 비해 이런 노동이 세상에 더 유용한 것 아니냐고 박경석은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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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대학생이었다가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로 장애인이 된 그는 장애인운동을 만난 뒤 자신이 경험한 감각의 쇄신을 동료 시민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저는 장애인운동이 제 무감각을 일깨우고서 어떤 감각을 가져다줬던 것처럼, 이 사회의 무감각 상태를 깨는 운동이 되기를 계속 바라왔던 것 같아요. (…) 소수자들의 투쟁이라는 거는 결국 이 세상에서 제대로 감각되지 않던 존재들을 이 세상이 감각할 수 있게끔 드러내는 과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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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지난 1월2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지난 1월2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