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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림책
벤야민 고트발트 글·그림, 윤혜정 옮김 l 초록귤(2023)

어린이들과 옛날이야기를 읽다가 ‘적막하다’라는 표현을 만났다. 3학년에게는 어려운 낱말이니 뜻만 알려주고 지나가려 했는데, 맥락상 그냥 ‘조용하다’라고만 설명하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한번 적막한 순간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2초를 넘기지 못하고 “큭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그건 잠깐 조용한 거고, 적막한 건 이것보다 오래 조용히 해야 하는 거야.” 몇 번 시도 끝에 겨우 5초를 넘기자, 나도 놀랄 만큼 적막한 순간이 만들어졌다. 어린이들도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성공했다! 기뻐서 “이게 바로…” 하는 순간,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소리가 내 목소리를 덮어씌웠다. 어린이들도 나도 웃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림책’에는 160여 가지 소리가 담겨 있다. 정확하게는 소리가 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글자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소리는 독자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무대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린 사람과, 밤중에 입을 크게 벌리고 손으로 가리는 사람이 있다. 두 장면은 각각 어떤 소리를 담고 있을까? 유리창을 힘차게 두드리는 빗방울,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굵은 물줄기 소리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무에 매달린 나무늘보는 아예 소리를 안 낼지도 모른다.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은 어떻게 다를까? 그림이 내는 소리를 듣다 보면 연상과 상상을 총동원하게 된다. 물론 같은 장면에서도 읽는 이마다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펼친 면 가득히 날고 있는 벌들도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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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없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친숙한 갈래 중 하나다. 그림책이니 ‘그림’으로 어린이에게 다가가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명쾌하지만, 실제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글이 필요 없을 만큼 이해하기 쉬운 면도 있지만, 글의 설명이 없어서 난감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또 글이 없으니 어린이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그 부담은 책 읽어주는 어른의 것이 되곤 한다. 여러모로 어린이에게 권하기에 주저될 때가 많다.

이 책은 ‘소리’라는 징검다리를 놓음으로써 어린이를 창의성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린이는 소리를 떠올리고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쓰면서 창작에 참여할 수 있다. 누군가 조금 화가 난 얼굴로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그림 옆에, 샌드백을 치며 권투 훈련을 하는 사람 그림이 있다. 두 그림을 따로 생각해도 좋고 묶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어린이가 잘 모르는 소리라면 자료를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어린이들과 ‘호른’ 연주를 찾아 들었다. 세탁기의 진동을 표현한 장면은 손으로 소리를 느끼는 방법을 알려준다. 세상의 다양한 소리는 다양한 길로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는가.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자신이 배운 ‘한국의 소리’를 그려 놓았다. 본문을 먼저 보고 나중에 서문을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