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는 부산과 닮았다. 면적이 719.1㎢로 부산(771.33㎢)과 비슷하다. 무역항으로 항만시설이 발달한 것도 그렇다. 다른 점이라면 부산이 대한민국 제2도시로 자리잡는 사이, 싱가포르는 세계로 향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믈라카해협 초입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인도·태평양 해상무역의 요충이 됐다. 2023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4734달러로 한국의 갑절이다.
싱가포르는 부산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부산은 싱가포르를 따라잡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넘어서려고 한다. 가능할까? 우선은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만들어진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부산시는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싱가포르가 먼저 간 경로를 따라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국제도시로 나아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별법은 발의 과정에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과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부산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참여했다. 자유무역도시인 싱가포르처럼 세금 감면과 무관세 등 규제의 빗장을 대거 풀자는 내용이 골간이다. 부산시는 지난달 특별법에 담긴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싱가포르와 두바이에 연구팀을 보냈다. 한겨레는 싱가포르 연구팀에 동행했다.

세계 최대 스마트 항만 도전하는 싱가포르
지난달 26일 찾은 항만 야적장(576㏊)은 컨테이너가 빼곡했다. 싱가포르 6개 항만 중 하나인 ‘파시르판장 터미널’ 앞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싱가포르 항만공사 홍보담당자는 “6개 항만 가운데 가장 넓은 자동차 전용터미널인데 투아스로 옮겨간다”고 말했다.
투아스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마주하는 국경 서쪽 바다에 조성한 면적 25㎢(2500㏊)의 인공섬이다. 싱가포르는 이곳에 세계 최대의 완전 자동화 스마트 항만을 건설하고 있다. 세계 2위 수준인 컨테이너 처리 능력(2021년 기준)에 만족하지 않고 28조4천억원을 들여 2040년까지 싱가포르 북·남쪽에 흩어져 있는 6개 항만을 투아스로 옮길 계획을 세운 것이다. 모두 4단계로 진행되는 사업이 마무리되면 싱가포르의 컨테이너 처리 능력은 현재 3750만티이유(1TEU는 길이 6.1m, 너비 2.4m, 높이 2.6m 컨테이너 1개)에서 6500만티이유로 2배가량, 선석 수는 현재 20석에서 66석으로 3배가량 늘어나 세계 1위로 올라선다. 부산의 2023년 컨테이너 처리량은 2275만티이유다.
놀라운 점은 건설 속도다. 투아스 1단계 구간은 착공 2년 만인 2017년, 2단계는 착공 3년 만인 2022년 완공했다고 한다.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부산신항 건설은 1단계 구간 완공에만 15년이 걸렸다. 이경덕 부산시 기획관은 “1995년부터 추진한 부산신항이 아직도 완공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추진력”이라고 말했다.


창업도시 싱가포르
최근 싱가포르가 주력하고 있는 건 ‘창업’이다. 세계적인 창업도시로 다시 거듭나기 위해 각종 제도적 허들을 낮추고 있다. 창업기업에 3년간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임대료 면제, 인건비 지원 등과 함께 매칭펀드 형식의 자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드레이퍼 스타트업 하우스’도 이런 흐름에 힘입어 싱가포르에 자리잡았다. 드레이퍼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본사다. 드레이퍼 스타트업 하우스 싱가포르본부 대표인 비크람 바라티(39)는 “각국 창업회사 10곳이 함께 상주하면서 공동 프로젝트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신생 기업들은 사업하는 조건이 좋은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싱가포르는 창업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글로벌 창업 컨설팅 회사인 ‘스타트업블링크’의 2023년 보고서는 싱가포르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를 세계 6위, 아시아 1위로 평가한다. 한국은 아시아 4위였다.
창업도시는 부산시가 꿈꾸는 미래이기도 하다. 창업기업을 두루 지원하는 부산창업청 설립, 한국산업은행 등 7개 금융·정부기관이 참여하는 25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 조성 사업도 그 일환이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부산항 북항 1부두 물류창고를 367억원을 들여서 개조해 혁신창업타운을 조성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규제는 많으나 실제로 경험하는 규제는 많지 않다. 부산이 글로벌 창업도시가 되려면 세계적인 앵커기업 유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곁으로 다가서려는 싱가포르
독립 뒤 한번도 정권교체를 경험하지 못한 싱가포르지만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게 도시계획이다. 싱가포르는 50년을 목표로 기획하는 도시개발의 큰 그림 속에 10년 장기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4단계 여론 수렴을 한다.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시민이 참가하는 공개 여론조사와 워크숍, 다양한 집단 토론, 이해관계자들과의 대면 회의를 통해 결정한 도시계획을 공공장소에서 여러달 동안 전시해 전파하는 방식이다.
개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지역 불균형과 소득 격차 해소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주목을 받는 건 부동산 정책이다. 시민·영주권자한테는 첫번째 임대아파트를 양도하면 두번째 아파트를 임대받을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임대아파트 2채를 99년 동안 공급한다. 교민 심아무개씨는 “1%대 이자에 보증금 80%를 대출받고 나머지 보증금 20%는 개인연금 납입금에서 매달 갈음한다. 개인연금에 가입돼 있다면 17~45평형 임대아파트에 월 10만원가량을 주고 살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 관계자는 “지역 내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에 민간아파트 못지않은 고급 임대아파트를 짓고 있다. 상업·주거 지역을 분산하고 교육시설 등 주민들이 선호하는 시설을 덜 개발된 지역으로 옮기는 정책도 병행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교육 분야에서도 선진도시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국제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 디플로마 성적이 세계 1위다. 교육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유명 외국대학을 유치하려는 부산으로선 이런 싱가포르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싱가포르 교육은 논쟁적이다. 초등학교 졸업시험을 잘 치러 6년 과정의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싱가포르국립대학 등 세계적 수준의 대학에 직행하는 구조다. 그런 만큼 자녀를 명문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학부모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다만 한국과 큰 차이점은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 정부도 중학교 때부터 금융·무역·관광 등 서비스 산업 중심의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도록 공을 들인다. 탕렁렁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일본학부)는 “싱가포르나 한국 모두 교육열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다양한 진로와 연결된 교육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싱가포르 연구팀을 이끈 성희엽 부산시 정책수석보좌관은 “국가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동남권의 거점이자 대한민국 제2도시인 부산이 ‘동북아의 싱가포르’가 되려면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