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책임을 돌에 새기기 위해 치유와 평화의 성당을 세웁니다. 이 성당은 과거를 붙잡는 장소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양심을 깨우는 신앙의 전례가 될 것입니다.”
봄 햇살이 비치던 지난 28일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성당.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문창우 주교가 마당을 가득 채운 신자와 주민들 앞에서 새 성전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허허벌판인 땅에 축복의 성수가 뿌려졌다.
이날 천주교 제주교구가 공식적으로 공사 시작을 알린 ‘치유와 평화의 성당’은 제주4·3의 상처 위에 만들어지는 성당을 뜻한다. 1957년 건축된 중문성당은 이미 2018년 4·3기념 성당으로 지정됐는데, 이 낡은 성당이 ‘치유와 평화의 기념 성당’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중문성당이 4·3 기념 십자가를 품은 배경에는 바로 그 터에 서린 아픔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가 있던 중문성당 터는 4·3이 발발하자 참혹한 학살터로 변했다. 1948~1949년 중문리·색달리·강정리 등 주민 71명이 이곳에서 마구잡이로 살해당했다. 2살 아이도, 80대 노인도 있었다.
고통받던 땅은 기도의 공간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중문 지역 주민들은 피난민을 돕던 외국인 신부에게 버려진 이 땅을 기증했고, 밭에 있는 돌을 날라 함께 중문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다. 1988년 중문성당으로 승격된 뒤에도 문 주교를 비롯해 이곳에 발령받은 신부는 4·3을 추모하고 주민을 위로해왔다.

고병수 중문성당 주임신부는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고통받는 신자와 함께해 온 이 성당도 70년이 지나 노후화되고 비좁아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다”며 “좀 더 확장해 제주도민뿐 아니라 모든 분의 사랑과 평화를 견인할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돼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7월 완공되는 새 성당은 4·3을 기억하는 다양한 공간으로 조성된다. 수녀원과 회합실을 허문 자리에 1302㎡(약 394평) 규모로 신축되는 성당의 제단 뒷벽은 희생자들이 잠든 제주4·3평화공원·한라산을 성당과 잇는 의미로 유리로 마감한다. 기존 성당은 기억관으로 활용한다. 4·3을 상징하기 위해 관련 기록과 시를 새길 13~15m짜리 기둥 4개,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머물며 아픔을 치유하는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기념탑도 세워진다. 설계는 전국 40여개 성당 건축에 참여한 김정신 단국대 건축학부 명예교수가 맡았다.

공사비는 최소 80억원으로, 신자가 900명 남짓인 중문성당이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전국 32개 본당 신자 1만여 명이 지금까지 힘을 보탰다. ‘청국장 신부’로 알려진 황창현 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도 30억원 상당의 청국장과 현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2022년에도 중문성당에 약 8억원을 지원했다.

제주교구는 내년 8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맞아 한국을 찾는 레오 14세 교황에게 새 중문성당 방문을 요청할 계획이다. 문 주교는 “교황님이 서울을 방문하실 때 제주로 직접 오시거나, 일정이 안 되면 한반도 상공에 들어오면서 4·3 희생자를 위한 분명한 메시지를 주시라고 부탁드리기 위해 편지를 준비하고 있다”며 “그 사전 작업으로 여름까지 새 성전의 의미를 담은 백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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