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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호남진흥원 자료교육부장 안동교 박사. 정대하 기자
한국학호남진흥원 자료교육부장 안동교 박사. 정대하 기자

광주 무등산 자락의 정자인 환벽당의 주인이었던 사촌(沙村) 김윤제(1501∼72) 선생과 관련된 기록을 망라한 ‘국역 사촌실기(沙村實記)’(심미안 냄)가 사후 450년 만에 발간됐다. 이 책엔 ‘사촌 김윤제의 생애와 환벽당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자료교육부장 안동교 박사가 사촌이나 환벽당과 관련이 있는 각종 문집, 역사서, 읍지, 고문서 등을 조사하고 발췌해 한문본 ‘사촌실기’를 묶은 뒤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문중에서 출간했다.

안 박사는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선비가 남긴 다양한 글을 모아 편찬한 책을 ‘문집’이라고 하는데, 굳이 실기라고 표방한 것은 그가 지은 시문이 현재까지 단 한편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계 후손 김충호씨는 서문에서 “불행하게도 우리 선조 충장공(김덕령 장군)이 원통하게 모함받아 감옥에서 죽고 충효리가 정유재란에 심하게 불에 타 집과 유문이 다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고 적었다.

국역 사촌실기. 심미안 제공
국역 사촌실기. 심미안 제공

사촌은 호남의 기라성 같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던 정자인 환벽당의 ‘건축주’였다. 광주목 석저촌(현 충효동)에서 태어난 그는 1531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교리와 춘추관 편수관 등을 지냈고, 부안현감과 나주 목사 등 여섯 고을 지방관을 거쳤다. 남원도호부 판관으로 옮긴 그는 을사사화(1545년)가 일어나자 “곧 병을 핑계 삼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지어 은거”했다. 환벽(環碧)이라는 말은 “푸른 산과 물이 고리처럼 빙 둘러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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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가 들어선 이후 당대에서 소세양, 송순, 임억령, 김인후, 양응정, 기대승, 고경명, 정철, 백광훈 등 호남의 기라성 같은 시인 묵객들이 환벽당을 찾아 시를 지었다. 김인후는 ‘소쇄원 사실’에 “(사촌은)마음이 너그러워 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도량을 지녔”다고 기록했다. 환벽당 앞 연못 일화도 흥미롭다.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던 사촌은 연못에서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깨어나 연못에 갔다가 멱을 감고 있던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슬하에 두고 글을 가르친 사촌은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 보냈다. 이 소년이 정치가와 문호로 이름을 날렸던 송강 정철(1536∼1593)이다.

하지만 정작 사촌의 문헌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안 박사는 2004년 한 학술대회에서 김윤제와 관련된 기록을 망라해 우선 ‘사촌실기(實記)’라도 발행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리고 2022년 12월 말 김윤제의 문중에서 ‘사촌실기’를 편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각종 문집·일기·역사서·읍지·족보 등에서 김윤제 관련 기록을 광범위하게 발췌해 한문본 ‘사촌실기’ 4권을 편찬했고, 지난해 1월 말 국역본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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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의 편지. 심미안 제공
송강 정철의 편지. 심미안 제공

최근 출간된 ‘사촌실기’는 총 4권으로 구성돼 있다. 1권에는 김윤제와 직접 교류한 호남지역 문인들의 시를 발췌해 배열했다. 수록한 시인은 모두 송순, 김인후, 정철 등 13명이다. 2권에는 김윤제 사후에 환벽당, 벽간당과 관련된 시를 남긴 호남지역과 기타 지역 시인들의 시를 간추렸다. 수록한 시인은 30명이다. 3권에는 김윤제와 환벽당에 관련된 기사를 문집·일기·실록·읍지 등에서 발췌해 담았다. 안 박사는 “절대 빈곤한 김윤제의 생애와 환벽당 기사를 보충해 줄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라고 말했다. 4권은 일종의 부록으로 만사·묘갈명·실적·족보 서문, 상량문 등 6건을 배열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