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10일 100만 촛불 대행진의 열쇳말은 ‘명박산성’이었다. 10일 새벽부터 서울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 한복판을 막아선 5.4m 높이 컨테이너 장벽은 11일 아침 철거됐다. 하지만 ‘용접명박’, ‘컨테이너 정부’, ‘쥐박산성’ 등 수많은 신조어를 낳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기를 거부했음’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온라인에 처음 등장한 ‘명박산성’은 이내 숱한 파생어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용접 장면을 본 누리꾼들은 ‘용접명박’이라는 신조어를 끌어냈고,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는 ‘용접명박’이란 말머리를 두른 게시글이 수만 건 쏟아졌다. 이 대통령에게 붙인 별명을 이용한 ‘쥐박산성’이란 말도 나왔다. 누리꾼 ‘아니’는 “하루 만에 쌓은 쥐박산성으로 겨우 2만 병력으로 70만 병력을 피해 없이 막아낸 쥐박이는 영웅”이라고 비꼬았다.
“자고 일어난 사이 거대한 성을 쌓다니,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 “대운하와 산성을 쌓는 모습이 진시황을 연상시킨다”, “서울 한복판에 컨테이너라니, 벌써 대운하가 완공됐단 말인가.” 누리꾼들은 ‘명박산성 댓글놀이’를 하며 현 정부를 조롱했다. 컨테이너 장벽 사진에 “이것은 국보 0호로 지정된 명박산성입니다”라는 글귀를 넣은 합성사진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참여해 꾸미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ko.wikipedia.org)에는 10일 “명박산성이란 2008년 6월10일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대규모의 시위에 대비하여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를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라며 “한국 일부 국민들은 이에 대해 ‘이것이 이명박 식의 소통’이라며 조롱하고 있다”라는 용어 풀이가 등장했다.
이런 비판과 조롱 밑바닥에는 소통을 거부하는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개탄과 분노가 깔려 있다. 광화문 근처 회사에 다니는 최아무개(32·경기 용인시)씨는 11일 “어제 출근길에 명박산성을 보고는 절망감을 느꼈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잔머리 굴릴 시간에 민심 수습 방안을 생각했으면 100가지도 더 생각해 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누리꾼(아이디 ‘Themis’)은 “촛불로 모인 시민들에게 명박산성으로 화답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짓밟아 버린다는 뜻”이라며 “이 정부는 또 한번 크게 실수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경찰 관계자는 “도심 한복판에 컨테이너 장벽을 칠 생각을 한 것에 놀랐다”며 “그런 장벽이 있으면 시민들은 차단됐다는 느낌을 더 받고 서운해하는데, 대처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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