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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1 19:27 수정 : 2008.06.13 01:20

위에서 부터 ①‘6·10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속된 11일 새벽 시민들이 “컨테이너라는 반인권적 탑에 맞서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권 탑을 쌓자”며 스티로폼을 옮기고 있다. ②반대 주장을 하던 한 시민이 토론 진행자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③한 시민이 스티로폼 연단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④토론 끝에 스티로폼을 컨테이너 차단벽에 붙여 다시 쌓기로 해 시민들이 이를 옮기고 있다. 김경호 김종수 이종근 기자 jijae@hani.co.kr

자정무렵부터 스티로폼 계단 설치 놓고 의견 대립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비폭력” 단상쌓고 토론
새벽 5시, ‘컨테이너 위 펼침막 · 태극기 달자’ 합의

수십 톤 ‘철의 장막’은 연약한 스티로폼 계단 앞에 무력했다.

무려 5시간. 시민들이 광장에서 벌인 ‘스티로폼 논쟁’은 거대한 ‘명박산성’에 숨어 소통을 거부한 청와대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수십만 시위대가 촛불대행진을 벌인 10일 자정께. 서울 세종로 네거리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앞으로 대형 스티로폼이 옮겨졌다. 인권 활동가들이 ‘소통을 거부하는 청와대’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한 소품이다. 이 단체 회원은 “우리가 경찰 저지선을 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넘지 않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원들은 스티로폼을 컨테이너 앞에 탑처럼 차곡차곡 쌓아 발언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위대 안에서 “스티로폼 계단을 이용해 컨테이너를 넘어 청와대로 행진하자”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넘자, 넘자”를 연호했다. 박수도 터져 나왔다. 시민들이 격앙될 조짐을 보이자, 행사 단체 회원이 나서서 “이 퍼포먼스를 계속 진행할지 토론해 보자”고 제안했다.

스티로폼 주변에 모인 시민들은 앞다퉈 자유발언에 나섰다. 컨테이너를 넘는 상징적인 의식을 치르자는 의견이 맨 처음 나왔다. 40대 한 시민은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였을 때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반대 발언이 이어졌다. 현아무개(25)씨는 “흥분한 시위대를 통제하지 못해 자칫 폭력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시민 수십명이 자유발언에 나섰지만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다. 새벽 3시께. 시민들은 스티로폼을 일단 컨테이너 앞쪽에 쌓아두고 토론을 계속하기로 했다. 30여분 만에 컨테이너 턱밑까지 하얀 스티로폼 계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일부 흥분한 시민 5∼6명이 스티로폼을 딛고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려 한 것이다. 주변 시민들은 일제히 “내려와! 내려와!”를 외쳤다. 일부 예비군 시위대가 이들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시민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스티로폼 높이를 낮추고 토론을 이어갔다. 또다시 자유발언이 시작됐다. 토론 주제는 ‘비폭력’ 문제로 진화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김아무개씨는 “촛불문화제가 지지를 얻었던 것은 비폭력 기조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컨테이너를 넘어서면 순수한 뜻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 20대 여성은 “이명박 대통령이 광화문 네거리조차 막아놓으면 우리는 또 돌아가야 하는가. 폭력과 비폭력을 나누는 기준이 도대체 뭐냐”고 따졌다. 이 여성은 “지금이야말로 저 장벽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전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 4시께. 팽팽하던 토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절충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 40대 시민이 “비폭력 주장에 100%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컨테이너를 넘자는 쪽의 무모함도 인정할 수 없다”며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태극기라도 꽂자”는 의견을 냈다. 시민들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결국 새벽 5시5분, 행사 단체 회원과 시민 10여명이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태극기와 대학 깃발 등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깃발이 컨테이너에 오르자 찬성 쪽, 반대 쪽 가릴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고 ‘애국가’와 ‘광야에서’ 등을 불렀다. 깃발을 든 이들도 10분 남짓 깃발을 흔든 뒤 자발적으로 컨테이너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컨테이너 앞에 대형 펼침막도 걸었다. 펼침막엔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라고 적혀 있었다. 5시30분께 시민들은 스티로폼 계단을 해체하기 전 컨테이너 위에 한 개의 스티로폼을 올려 태극기를 꽂았다.

시민 이아무개(31)씨는 “우리가 화가 난 것은 청와대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들어주길 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티로폼을 준비했던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사고 없이 끝나게 돼 다행이다. 광장에서 정치토론이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촛불시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많은 시위에서 무력하게 돌아섰는데, 시민들이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고, 공동 실천도 하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스티로폼을 준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황춘화 김성환 기자 haha@hani.co.kr

■ 밝혀왔습니다

12일치 3면 ‘광화문 스티로폼 논쟁’ 기사 스티로폼을 ‘인권 활동가들이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한 소품’이라고 보도했으나, 인권 활동가들은 “우리는 현장에 있던 스티로폼을 퍼포먼스에 활용하자고 즉석에서 제안했을 뿐”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스티로폼은 집회 주최 쪽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비해 시위대 보호용으로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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