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법안 처리와 관련해 본회의 직권상정을 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쟁점 법안 처리와 관련해 본회의 직권상정을 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언론 관련법 기습상정을 통해 법안 처리의 첫단추를 채운 한나라당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경해지는 분위기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26일 기자들과 만나 “야당과 협상해서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라며 “언론 관련법, 출자총액제한 폐지, 금산분리 완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이번에 싹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어제 소위를 통과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꼭 통과시키겠다. 정무위원회에서 대체토론 중인 법도 표결처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공세의 수위를 한껏 높인 것은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한나라당이 모든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는 모양을 취해, 김 의장이 법안 하나라도 더 직권상정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언론 관련법 상정에 반발하는 야당에 또다시 양보를 한다면 국면을 주도하기가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 의장은 “이미 법안을 깔끔하게 처리하기는 틀렸다”며 “정치권에서 설득하는 모양새를 갖추네 마네 하는데 설득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광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듯, 한나라당은 이날 밤 늦게 정무위에서 쟁점법안의 기습 처리를 시도했다. 김영선 위원장을 앞세운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녁 8시40분께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를 갑자기 소집해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산업은행 민영화 등과 관련 법안의 처리를 서둘렀다. 민주당 의원들의 의사방해연설(필리버스터)로 사정이 여의치 않자 김 위원장은 밤 11시45분께 이들 법안을 가결시켜 법사위로 넘기려 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의 실력 저지로 결국 무산됐다.

한나라당의 강공 드라이브는 이번엔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최대 희망’은 이들 경제관련 법안과 언론 관련법안들을 모두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중 언론 관련법은 당내에서도 “이번엔 상정만 시키고 4월에 통과시키자”는 의견이 많았다. 상정은 했으니 ‘과락’은 면한 셈이다.

광고
광고

경제 관련 법안 통과에 대해선 김 의장이 이것만큼은 직권상정을 해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품고 있다. 실제로 김 의장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민생과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국민이 기대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여야가 진지한 노력을 해 주길 당부드린다”며 “해당 상임위는 내일(27일)까지 관련 법안에 대한 심사를 모두 완료해 주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언론 관련법을 직권상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경제 관련 법안은 이미 공청회·대체토론 등 절차를 다 밟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회를 닷새 앞둔 국회 상황이 한나라당 계산대로만 흘러갈지는 알기 어렵다. 언론 관련 법안의 상임위 상정에 대해 언론계·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질 경우 야당은 외부 동력에 힘입어 투쟁 강도를 높일 수 있다. 김 의장이 한나라당의 기대를 충족시킬지도 알 수 없다. 한나라당의 기대치와 김 의장이 생각하는 ‘민생경제 관련 법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조절론’을 폈던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도 변수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성우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언론 관련법을 포함해 쟁점 법안에 대한 입장은 이미 밝혔다”며 “당 지도부에서 현명하게 잘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골적인 비판은 아니지만, 기습상정이 못마땅하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광고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언론법’으로 때리고 ‘경제법’ 챙길 속셈?▶세자녀 이상 가구에 분양 우선권 ▶‘중상해 모호’ 사고현장 혼란 불가피▶총파업 재개…MBC 뉴스시간 축소▶‘광고퀸 김연아’ 연예인 울리는 비밀▶오바마, 부유층 세금 늘려 의료보험 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