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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 담아 죽어서도 사람들을 치유하리라

등록 :2020-12-03 09:18수정 :2020-12-03 09:19

불편당 일기 13: 인동(忍冬)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초여름 날 아침 일찍 홀로 산행을 나섰다. 올해는 유난히 무더워 해 뜨기 전에 여름 숲으로 산행을 나선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야산 숲. 소나무 군락을 지나 참나무 군락의 오솔길로 들어서자 벌써 신발과 바짓가랑이가 다 젖었다. 밤새 내린 이슬 때문이다. 아랫도리가 축축하지만 그래도 무더위를 잊을 수 있어 이슬들이 고맙기만 했다. 오솔길 옆엔 여리고 부드럽던 봄풀들이 무성히 자라 짙푸른 숲으로 변했다. 산은 온통 여름 식물들이 뿜어대는 생명의 기운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푸른 잎새들이 살랑거리는 싸리나무 군락을 지나자 갑자기 은은한 꽃향기가 물씬거린다. 향기 나는 쪽을 보니, 찔레 덩굴과 화살나무를 휘감으며 꽃을 피운 인동덩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동덩굴이 이룬 작은 숲은 아침볕을 받으며 금빛 은빛으로 타오르는 꽃들로 뒤덮여 낙원에라도 입장한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말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 29) 그러니까 오늘 나는 왕보다 지체 높은 피조물의 영광을 마주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인동덩굴 옆엔 사위질빵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위질빵은 인동과 거의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는데 흰색의 꽃은 잎겨드랑이에 원추꽃차례로 달려 꽃이 무척 커 보인다. 향기는 인동에 버금가는데, 사위질빵 꽃과 인동 꽃은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우리는 이 두 종류의 꽃을 보면 여름이 성큼 당도한 것을 알 수 있다.

인동 꽃향기에 반해 가까이 다가가 꽃에 코를 가져다 대려는 순간, 나보다 먼저 꽃향기에 반해 몰려든 녀석들이 붕붕거린다. 나는 주춤 물러섰다. 새벽 일찍 출근해 향기 진동하는 푸른 덩굴 속을 들고 나는 일벌들. 인동은 향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꽃 속에 꿀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벌들의 사랑을 한껏 누린다. 따라서 인동 꽃 주위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로 늘 소란스럽다. 강원도 오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인동 꽃을 따서 꽃 속의 단물을 빨던 추억이 살아 있다. 꿀 많은 꽃 중에는 이름 자체가 꿀풀이라 불리는 풀도 있는데, 꽃송이를 꺾어 쪽쪽 소리 내어 빨아먹기도 했었다.

나는 꿀벌에 쏘일까 조심하며 어린 시절처럼 인동 꽃 하나를 따서 입에 넣고 쪽쪽 빨아보았다. 몇 개를 빨았더니 입안에 향긋한 단물이 고였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풀이나 나무, 꿀벌 같은 존재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들과 자발적인 소통을 나누고 있구나. 예컨대, 어떤 나무에 나쁜 벌레가 있으면 그 나무가 주위의 나무들에게 소식을 전해서 그 벌레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쓴 물질을 내뿜어 나쁜 벌레의 침입을 막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꿀벌들도 먹을 만한 양식을 발견하면 꿀통으로 돌아와서 특별한 춤을 추어 동료 벌들이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베어 하트,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참조)

인동 역시 꽃향기로 다른 생명체들을 불러들여 소통하며 그 생명체들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며 나는 인동 꽃 몇 송이를 뜯어 봉지에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아내는 인동 꽃을 보거나 그 향기를 맡으면 무척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인동 꽃 향에 취한 날이면 언제나 아내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참 이상해요! 왜 화장품 만드는 이들은 인동 꽃의 은은한 향기를 모르는 걸까요?”

대문간으로 들어서며 아내를 불러 내가 뜯어온 인동 꽃을 건네주자 아내가 고맙다며 말했다.

“당신, 인동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을 아세요?

“아름 슬픈 전설이라! 모르는데…”

평소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내는 중국 민담에서 읽었다며 인동에 얽힌 눈물겨운 전설을 풀어놓았다. 옛날, 중국 땅에는 마음씨 고운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부부는 금화와 은화라는 쌍둥이 딸을 슬하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금화와 은화는 평소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늘 붙어서 지냈고, 살아 있을 때만 아니라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히자는 약속을 하기까지 했다.

이 쌍둥이 딸이 무럭무럭 자라 혼인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마을에 몹쓸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언니인 금화가 먼저 전염병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 동생 은화는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보람도 없이 언니는 점점 쇠약해져만 갔는데, 은화 역시 그 무서운 전염병을 피해 가지 못했다. 병이 깊어져 죽음을 앞둔 자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우리가 죽으면 약초가 되어 이 세상에 다시 피어나 우리가 걸린 것과 같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어요.”

금화와 은화는 결국 죽어서 한 무덤에 묻혔는데, 이듬해 봄 신비롭게도 그 무덤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덩굴이 자라났다. 덩굴은 이리저리 뻗어가며 무성하게 자라더니 여름이 오자 금색과 은색의 예쁜 꽃들이 뒤섞여 피어났다. 그 꽃을 본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생각하여 ‘금은화’(金銀花)라고 불렀고,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인동초. 사진 픽사베이
인동초. 사진 픽사베이

이런 아름답고 슬픈 전설까지 향낭처럼 간직한 인동은 인동과에 속하는 반상록 덩굴식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운다. 겨우살이덩굴이란 이름은 추운 겨울에도 줄기가 마르지 않고 살아서 봄에 다시 새순을 내기 때문이다. 금은화란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은빛 꽃과 금빛 꽃을 차례로 피우기 때문이다. 사실 인동은 풀이 아닌 나무인데 사람들은 흔히 인동초(忍冬草)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동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낸 사람을 ‘인동초’라 호칭하기도 한다.

인동은 우리나라 북부지방을 제외한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덩굴나무로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한다. 햇빛이 잘 드는 양지를 좋아는 정열적인 식물이다.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겨 올라가며, 속이 비고, 무려 5미터까지 길게 자란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피침형 또는 난상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에는 털이 난다. 꽃은 5〜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1〜2개씩 달리며, 처음은 흰색이지만 나중에는 노란색으로 변한다. 화관은 예쁜 입술 모양이다. 수술은 5개이고, 암술은 1개. 열매는 둥글고, 9〜10월에 검게 익는다. 열매는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이 없어 먹는 사람이 없다.

인동은 뛰어난 약성을 지닌 식물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민속의학자인 인산 김일훈 선생은 『신약』이라는 책에서 인동이 염증을 없애고 독을 푸는데 으뜸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인동은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 미네랄, 폴리페놀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고 한다. 특히 폴리페놀 성분은 우리 몸에 있는 활성 산소(유해 산소)를 해가 없는 물질로 바꾸어 주는 항산화 효과가 있어 노화를 방지한다.

우리 집에서는 이처럼 좋은 약성을 지닌 인동으로 술을 담거나 차를 만들어 마신다. 인동 술은 초여름에 금방 핀 흰 꽃을 따서 말려 소주나 청주에 넣고 따뜻한 곳에 한 달 가량 두어 엷은 노랑 빛으로 우러나면 마실 수 있다. 이 술은 종기, 부스럼, 관절염 등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밥 먹기 전에 작은 잔으로 한 잔씩 마신다. 한 잔씩만 마시라고 강조하는 것은 약술을 취하도록 마시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동 꽃으로 약술을 담아 마셨는데, 술로 담아 먹는 것이 체내에 흡수가 잘된다. 인동 술을 담아 두면 꽃향기를 맡을 수 없는 한겨울에도 향긋한 꽃술을 마시며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

잎을 활용하는 인동차는 그 맛과 빛깔이 녹차와 비슷하다. 여름에 인동 잎을 따서 작두로 썰어 그늘에 하루쯤 두었다가 불에 가볍게 덖어낸다. 우리 집 뒤란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어 해마다 불을 피워 인동잎을 덖는데, 때가 한여름이라 구슬땀을 쏟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덖어낸 잎을 비닐봉지에 담아 두었다가 마시고 싶을 때 2~3그램씩을 더운물에 우려내어 마신다. 인동차는 해열, 이뇨, 감기, 종기 등에 효과가 있으며 간염에도 좋다고 한다.

인동은 피부병에나 땀띠 같은 데도 효과가 있고, 고름을 없애는 힘이 뛰어난 약초이다. 말려둔 인동 잎과 덩굴을 물에 달여 목욕을 하면 된다. 하여간 인동을 약으로 쓰려면 잎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덩굴은 가을에 채취하여 잘게 썰어 말려두어야 한다. 인동 같은 야생초는 매우 흔하지만 그걸 뜯어 약으로 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나는 텃밭농사도 하고 부업으로 글도 쓰며 살아가는데, 틈틈이 들로 산으로 나가 우리 가족에 필요한 약초를 뜯어다 말려 저장해 두곤 한다.

모든 식물들이 그렇지만 인동도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자기 존재 자체를 아낌없이 선물로 내어주는 식물이다. 인동의 꽃말에도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인동 꽃의 꽃말은 ‘헌신적인 사랑’이고, 인동덩굴의 꽃말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런 꽃말을 붙인 이는 그 청초하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인동에서 어버이의 헌신과 사랑을 느꼈던 것일까. 아마도 그 사랑에 대한 고마움에서 이런 꽃말을 붙였으리라.

어디 인동 뿐이랴. 지구 위의 모든 풀과 나무들을 우리는 이런 꽃말로 칭송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양식은 물론 우리가 병이 들어 아플 때 사용하는 모든 약의 원료들이 지구 위의 식물들에게서 나오지 않던가.

이런 점을 존재 근원의 자리에서 파악한 수도승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하느님이 깃들어 있고, 하느님이 둥지를 틀고 있는 이 신성한 우주의 선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란 한 마디뿐이다”라고 했다. 감사! 그러니까 진정한 감사는 우리가 지구 어머니로부터 받는 것들이 신성한 우주의 선물이라는 자각이 선행될 때 가능하다. 이런 깨우침 때문일까. 산행 중에 인동 꽃이 매달린 덩굴 속을 들고 날며 붕붕거리는 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것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수천수만 번 날개를 치며 꽃들과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저 소리는 벌들이 인동덩굴에 바치는 감사의 의식일 거라고!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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