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C 데이트 / 내달 ‘8000m급
14좌’ 등반 나서는 오은선
어려서 남달리 무서움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 안장에 처음 앉았지만, 지나가는 버스에 휘청거린 공포를 잊지 못해 지금도 자전거를 타면 직진 밖에 할 줄 모른다. 하지만 마음 속의 무서움을 하나하나 없애간 그는 어느덧 성인이 돼 한국 최초 7대륙 최고봉과 아시아 최초 에베레스트 단독등정을 해낸 여성 산악인으로 우뚝 서있다.
올해 마흔두살의 미혼 산악인 오은선. 1m55에 50㎏의 작은 체구지만, 온몸엔 산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꿈틀댄다.
“아버지 손 잡고 북한산 소풍을 갔다가 인수봉에 매달린 암벽등반가들을 본 것이 등산에 대한 가장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죠.”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엔 그저 바위에 늘어진 로프(밧줄)를 붙잡고 올라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산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워간 그가 산악반에 가입한 것은 수원대에 진학하고서였다. 그렇지만 남들이 모두 인수봉을 오를 때, 밑에서 짐만 지키며 백운대조차도 혼자 오르지 못하는 ‘겁많은 초보’에 불과했다. 그렇게 산에서 외톨이가 되자 오기가 발동했고, 인수봉 도전을 결정한 것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해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과학교육원 전산직 공무원으로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3년만에 직장과 결별하게 만든 것은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였다. “1993년 에베레스트 대원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많은 고민 끝에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고, 직장을 그만뒀죠.” 자신의 첫 해외여행이자, 첫 원정산행을 떠난 그가 생전 처음 국제전화로 안부전화를 했지만, 사표를 낸 사실을 뒤늦게 안 부모한테서는 “산에서 살고,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야단을 맞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7300m나 되는 에베레스트 캠프3 등반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지만,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생활은 그 혹독한 댓가였다. 먹고 사는 것을 위해 2000년 평촌에 조그마한 스파게티식당을 냈다. 장사가 잘 되지도 않았고, 1년이 지나자 잇몸이 다 상하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건강도 악화됐다. 마침내 부모로부터 “(산에서) 쉬고 오라”는 배려로 2001년 6~8월 K2봉 8000m까지 오르고는 건강과 생활의 활기를 되찾았다.
이듬해엔 등산장비업체 영원무역 직원으로 채용되면서 안정된 생활과 등산 지원까지 받는 행운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7대륙 최고봉 도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49m)와 에베레스트의 아시아 여성 최초 단독등정이라는 족적을 남겼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오희준·이현조 대원 사망사고로 그의 K2 도전이 난관에 부딪치게 됐다. 스폰서사인 영원무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그러나 지난해 7월20일 한국 여성 최초 등정에 나서 마침내 성공하고 만다. 대신 영원무역을 그만두어야 했지만….
“무서운 건 신체나이”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그에게 최대의 고민거리가 있다. 그는 “그대로 맨몸으로 등반하는 게 옳기는 하지만, 산소의 도움을 받아 8000m급 에베레스트 14좌 여성 최초등반 기록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산에 가면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젠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다”면서도 “프로는 그 이면에 뒤따르는 의무가 있어 부담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의 등산철학은 단호하다. “도전과 집착 사이에서 현명한 길을 선택하는 산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달 20일 그는 다시 히말라야로 향한다. 로체(8516m)와 마칼루(8463m)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사진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