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필리핀 사가다 마을에서 출발해 이른 아침 해발 1889m의 암파카오산을 오르고 있다. 가는 길에 소떼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필리핀 사가다 마을에서 출발해 이른 아침 해발 1889m의 암파카오산을 오르고 있다. 가는 길에 소떼를 만났다.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졸고 깨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여기서 차를 타고 더 올라갈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좁고 경사진 아스팔트 도로를 한참은 더 달려 오후 3시쯤 나, 에스(S), 케이(K)는 필리핀 사가다에 도착했다. 아침 8시 바기오에서 출발할 때까지 만해도 만차였던 버스의 승객은 이제 몇 사람 보이지 않았다. 지붕 위에 꽁꽁 묶어 싣고 온 배낭 세개를 우리와 함께 내려준 버스는 먼지를 풀풀 날리며 사라졌다. 그 순간 한 대머리 남자가 “어서 와! 친구!”라고 외치며 언덕을 넘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에스의 오래된 친구 앤드루였다.

필리핀 사람 앤드루는 아내와 함께 2001년부터 사가다에 정착해 살면서 10년째 로컬 주류를 만들고 있다. 전통 음료에 관심이 있어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음료의 정점에 놓여 있는 ‘술’에 빠져들게 됐고 현재는 맥주를 비롯해 위스키, 럼, 진 등 여러 술을 직접 제조할 뿐만 아니라 사가다에 작은 선술집을 차려 판매와 유통을 겸하고 있다. 평균 해발 1300m 고지에 자리해 연중 기온이 서늘한 산악마을 사가다는 앤드루가 손수 술을 만들고 발효시키고 저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사가다 ‘필리핀의 샹그릴라’

그리고 언제든지 산을 오르기에도 최고의 환경이었다. 앤드루는 주류 장인이기 전에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너였다. 서른살 나이에 작고 조용한 사가다라는 동네에 들어와 반백살이 될 때까지 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산이 많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바기오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대회 ‘코르디예라 마운틴 울트라(CMU)’에서 앤드루는 장년의 나이임에도 5㎞ 오르막 부문과 21㎞ 부문에 출전해 각각 2위에 올랐다. 대회장에 수제맥주 부스를 차리고 완주한 러너들에게 축하 맥주를 제공하며 행복해하던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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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일곱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기오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일곱시간이 걸려 도착한 사가다는 바기오와 함께 코르디예라의 마운틴주에 속한 소읍으로, ‘필리핀의 샹그릴라’로 통할 만큼 멋진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산지가 많아 오지 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특히 죽은 자의 영혼이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에 고인이 매장된 관을 동굴이나 절벽에 매달아 ‘풍장’을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앤드루의 집 마당 한가운데 마련된 캠프 파이어 존.
앤드루의 집 마당 한가운데 마련된 캠프 파이어 존.

나와 에스, 케이는 앤드루를 따라 그의 집으로 이동했다. 작은 언덕을 오르고 키가 큰 나무 사이를 한참 동안 걷자 눈앞으로 숲에 에워싸인 통나무집이 나타났다. 앤드루와 그의 아내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주류를 만드는 그답게 집 밖 곳곳에는 커다란 술통이 놓여 있었고 마당 한가운데는 밤낮 언제라도 모닥불 곁에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캠프파이어 존이 마련돼 있었다. 어제도 누군가가 모여 불을 피우고 놀았는지 구덩이 속에 회색빛 재가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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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는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와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녀의 이름은 빙, 앤드루보다 여덟살 연상으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사가다에 온 것을 환영한다던 빙은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겠다며 우리가 묵을 방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빙을 따라 우리는 다시 키가 큰 나무 사이를 지나 얼마간 오솔길을 걸었다. 길섶의 안내판에는 “고요하라”(to be silent)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빙은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매일 새벽 홀로 이 길을 걸어요. 그리고 세상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어요.”

빙을 따라간 곳에서 맞닥뜨린 집은 마치 요새를 떠올리게 했다. 산을 파서 굴을 만든 뒤 그 속에 벽돌 등의 건축재를 이용해 완성한 아늑한 방이었다. 이렇게 만든 방이 현재 아홉개. 22년 전 앤드루와 빙은 사가다에 들어오며 지금의 집터에 두사람 몸 누일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그것은 하나의 꿈 때문이었다. 산과 함께하는 삶. 산의 기운 속에서 일어나 먹고 일하고 즐기고 쉬고 잠드는 삶. 이후 두사람은 긴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집 주변 터를 손수 닦고 넓히며 누구든지 초대해 얼마든지 머물다 갈 수 있는 현재의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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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포착한 찰나의 장면

어느덧 밤이 깊었다. 불빛 하나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 요새 같은 방에 누워 있으니 무덤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죽으면 이런 기분이겠지? 그 기분은 영혼만이 알 수 있을까? 별별 상상을 다 했다. 이곳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저녁 8시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벽 4시면 하루를 시작했다. 그에 맞춰 우리도 일출을 보기 위해 이튿날 새벽 어스름을 뚫고 암파카오산으로 향했다. 앤드루의 집에서 남서쪽에 솟아 있는 해발 1889m의 큰 산이었다.(참고로 지리산 천왕봉 높이가 1915m) 출발부터 내리는 부슬비를 핑계 삼아 잠을 좀 더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미지의 산을 향한 마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모레면 나, 에스, 케이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앤드루와 빙이 손수 만든 토굴. 방문한 친구들이 언제든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산속에 조성한 아늑한 공간이다.
앤드루와 빙이 손수 만든 토굴. 방문한 친구들이 언제든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산속에 조성한 아늑한 공간이다.

평균 해발고도 1300m인 산악마을에 있는 앤드루의 집에서 출발해 마을을 지나고 수로를 건너 날이 밝기 전 미명의 산을 올랐다. 까만 허공 속 헤드랜턴 불빛에 반사된 비는 하얀 눈 같았다. 비를 맞은 나무와 낙엽과 바위는 살아 있는 듯 움직였다. 산길은 미끄러운데다 가팔랐다. 인적이 드물어 수풀이 우거진 길을 오직 앤드루와 그의 반려견 마과의 꽁무니만 쫓으며 걸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앤드루는 이 산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날 잡고 마음먹어야 오를 수 있는 큰 산을 뒷산으로 둔 앤드루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평온하고 단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산과 함께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두사람이 젊은 날 잃었고 지켜낸 것은 무엇일까? 앤드루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질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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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은 보지 못했다. 가까스로 오른 정상은 안개로 가득했고 바람이 운 좋게 구름을 옮겨줄 때라야 먼 산의 능선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찰나의 장면을 포착할 때마다 새삼 확인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멀고 깊고 높고 아름다운 산에 올라와 있는지. 문득 삶에서도 어쩌면 허상의 연기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하는 발길은 가벼웠다. 따뜻한 아침 식사가 준비돼 있을 앤드루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케이는 신이 나서 물구나무서기를 했고 에스는 이번만큼은 앤드루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소년처럼 달려나갔다.

글·사진 장보영 등산여행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올랐다. 그러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다. 지은 책 ‘아무튼, 산’은 산과 함께한 청춘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