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 편찬 논의를 위해 최근 방문한 평양 시내의 밝아진 거리 모습.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총무과장
겨레말큰사전 편찬 논의를 위해 최근 방문한 평양 시내의 밝아진 거리 모습.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총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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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30일 저녁이 가까운 시각,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들과 편찬실 직원들이 탄 고려항공 여객기가 순안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5년7개월 만이었다. 공항 청사가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에 착륙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활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존의 활주로를 보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활주로를 만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순안공항 옛 청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순안공항 청사의 몇 배나 되어 보이는 신청사가 보였는데 역시 공사중이었다. 신청사 옆의 가건물을 통해 입국 수속을 밟고 나왔다. 입국할 때 개인 휴대전화기를 되돌려주었다. 예전에는 공항 세관에 보관했어야 했다. 신청사의 정면에서 “조선속도”라는 붉은 글씨를 읽었다.

조명 장식한 40~50층 빌딩 즐비 차량 늘어나고 옷 색깔도 다양 상당수 시민 휴대전화로 통화 스마트폰을 ‘터치’라고 불러 거리 구호 ‘전환’ ‘변화’ 많아 주민 “지식경제시대로 나아가”

버스를 타고 평양시내로 들어왔다. 만수대동산과 인민대학습당 근처에 오니 변화의 조짐이 더욱더 확연해졌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40, 50층의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빌딩 외관에 조명장식을 해두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만난 셈이었고, 충격을 받았다. 여전히 평양은 칙칙하고 낡은 건물들과 한산한 거리와 검은색 위주의 옷을 입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불야성이라니, 전력 사정이 나쁘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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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큰사전 편찬 논의를 위해 최근 방문한 평양 시내 모습. 대동강변에 짓고 있는 건물들.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총무과장
겨레말큰사전 편찬 논의를 위해 최근 방문한 평양 시내 모습. 대동강변에 짓고 있는 건물들.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총무과장

버스 차창에 바짝 앉아 바깥 풍경에 집중했다. 차창 관광인 셈이었다. 자동차가 많아져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려야 했다. 승용차와 버스는 물론이고 택시까지 자주 눈에 띄었다. 베이징에서 이용하던 택시와 외양이 똑같았다. 택시의 숫자도 엄청 많았다. 게다가 퇴근길을 재촉하는 평양 시민들의 옷의 색깔도 다양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당한 숫자의 시민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어린 축들은 길을 걷다가도 손가락으로 화면을 만지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스마트폰을 ‘터치’라고 부른다고 했다.

건물이나 거리에 나붙은 구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위대한 변혁”, “전환”과 “변화”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옆에 앉은 북쪽 사람에게 물었더니, “지식경제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레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식경제시대의 젊은 리더십이 오늘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밤새 대동강에서 모래를 퍼 올리는 준설선의 작업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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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호텔 창문으로 보니, 대동강을 끼고 도는 도로변에 5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김책공대의 교원과 직원 아파트라고 했다. 주황색의 멋진 건물이었다. 평양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으로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의 행렬이 제법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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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변화가 곧 실존의 조건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도시도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 닷새에 걸친 이번 평양 방문에서는 온갖 생명들을 품어내고 길러내는 도시의 그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활기가 넘친다는 것은 곧 생명력이 넘친다는 뜻이다.

에볼라 때문에 평양 곳곳을 다녀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양각도 호텔에서 남북의 학자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편찬회의와 집필회의를 이어갔다. 이번 회의에서 남과 북의 학자들은 1만8000개 단어를 점검하여 1만5000여개의 뜻풀이에 합의했다. 앞으로도 1년에 네 번씩 회의를 개최하여 매년 8만개의 단어를 결정해 나가기로 했다. 단어 하나씩을 심의하고 합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전은 그 길고 지루한 일들을 반복하고 반복해서야 겨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겨레말큰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정도상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