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와 성조기를 열렬히 흔드는 참여자 100여명 손에는 굵은 글씨가 적힌 손팻말이 함께 들려 있었다. “부정선거 부정하는 자 공범이다”, “부정선거 수사하라!”
17일 오후 2시 보수단체 자유통일당이 개최한 ‘자유통일을 위한 부정·조작선거 수사 촉구 범국민대회’에서는 “총선 부정선거”를 기정사실화하며, 비상계엄은 이를 막기 위한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12·3 내란사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빼다 박은 구호와 외침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배경 중 하나로 ‘부정선거’를 암시하고, 여당이 이런 발언에 대해서조차 명확히 선을 긋지 않으면서 보수단체와 극우 유튜버들 사이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불 지핀 상식 밖의 음모론이, 시민들 인식의 간극을 넓혀 탄핵 국면 이후에도 ‘대화와 절충’이 불가능한 사회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이 내란 사태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도 (선관위에)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힌 뒤, 부정선거 음모론은 한층 증폭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 방송 등에선 “이미 선관위 서버를 군이 확보해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며 곧 부정선거론이 사실로 드러나리라는 주장까지 번지고 있다.
다만 이는 내란 사태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충격적인 인식”이라고 이를 정도로 황당한 주장에 가깝다. 가령 대통령이 언급한 문제 있는 부분은 보안 점검 작업 일환인 ‘가상해킹’과 관련한 걸로 보이는데, 이는 선관위가 국가정보원에 정보를 제공하고 자체 보안 시스템도 적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 그 결과 나온 문제점은 4월 총선 전에 보완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국회 현안질의에서 “시스템상으로 (부정선거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 입장에 대해서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통령이 증폭시킨 음모론에 대해 대통령 사과는 물론 여당의 진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점이다. 이수정 국민의힘 수원정 당협위원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선거관리위원회는 털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했다.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까지 발언한 배경이다.
전문가들도 대통령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은 음모론이 상식적인 대화와 절충이 불가능한 사회적 균열을 만들 가능성을 우려한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리더의 음모론은 의혹 제기를 넘어 누군가를 박해, 탄압할 수 있는 행동력과 폭력을 가지고 있다”며 “정치라는 건 대화와 절충이 기본인데, 음모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치러야 할 가장 큰 비용은 대화와 절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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