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숨진 채 발견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김아무개(51) 국장이 생전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사건 처리 문제로 압박감을 느꼈다는 증언이 잇따르는 가운데, 고인과 사망 이틀 전 나눈 대화를 공개한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이 권익위의 정치적 독립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이사장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어젯밤 찾은 세종 장례식장에서 황망하게 간 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무엇이 그를 아직 성인이 안 된 자녀 둘을 두고 그리 세상을 떠나게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눈물이 올라온다”며 “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확보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시작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1992년 당시 육군 중위로서 군대 내 부재자투표 과정의 부정을 폭로한 1세대 공익제보자다. 이후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경기도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장,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 교수 등을 맡으며 반부패 활동과 연구, 공익제보자 지원 등을 이어왔다.
이 이사장은 권익위 김 국장과 사망 이틀 전 카카오톡 대화를 나눴다. 고인이 지난 6월 김 여사 사건 종결 처리와 관련해 조사 책임자로서 심적 부담을 느꼈다는 내용이 담긴 해당 대화는 앞서 한겨레 보도로 전해진 바 있다. 다만 당시엔 ‘지인’으로만 표기됐다.
이 이사장은 대화를 나눈 이가 본인임을 밝히며 “극단적 선택 속보가 나온 후 얼마 안되어서 기사 내용이 업무과중, 스트레스로 인한, 마치 개인의 힘듦인 양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가 업무가 고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 6월 말 통화, 그리고 세상을 뜨기 이틀 전 나누었던 톡 내용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해당 대화에는 ‘최근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하다.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김 국장의 최근 심경이 담겼다.
이 이사장은 “‘조금만 참으세요’라는 톡에 ‘네 교수님이 겪으셨던 것보단 쉽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찾고 있습니다’라고까지 하고서는 왜 이리 갔는지…”라며 고인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의 다른 동료들이 “(김 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김 여사 명품 백 사건 관련 압력 때문이라는 건 권익위 선후배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언급하는 등 김 국장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 명품백 사건 처리 과정의 압박이 있었다는 주변 증언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어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권익위의 취약한 중립성과 정치적 독립성이 비극을 낳은 단초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선캠프에서 정치공작진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검사 출신을 위원장으로, 그리고 그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가고 나서 온 위원장은 대통령과 법대 동기에 여당에서 당협위원을, 그리고 이번 디올백 종결처리를 주도한 반부패 전담 부위원장 역시 대선캠프에서 활동하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해촉된 이력이 있는 검사 출신”이라고 짚었다.
직전 권익위원장인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을 중수2과장으로 거느린 직속상관이었고, 뒤이어 임명된 유철환 위원장도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다. 두 사람 모두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 이사장은 “이 문제는 이번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법을 개정해서 위원장, 부위원장은 임기 3년을 고려해 직전 3년 내 선출직에 예비후보 등록하였거나 출마했던 자, 대선캠프에서 직책을 맡았던 자는 최소한 배제하기 바란다”고 했다. 현재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위원장과 부위원장(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한편 이날 아침 고인의 영정과 유가족은 아침 8시 발인식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 그의 일터였던 정부세종청사 권익위 청사를 찾았다. 동료들은 김 국장이 화장장을 거쳐 천안의 가족묘에서 영면에 들 때까지 뒤를 따랐다. “왜 말이 없니. 내가 먼저 가야지 네가 여길 왜 오니. 세상이 참 무정하다.” 어머니가 김 국장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울부짖는 동안, 10대인 두 자녀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동료들도 숨죽여 따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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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