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올해 2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지축동 이웃 제공
눈 내린 올해 2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지축동 이웃 제공
광고

삐삐언니의 마음책방은?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새로 알게 된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해력이 좋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격려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요. 좀더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은 삐삐언니가 책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서울의 ‘교통 좋은 곳’에 오랫동안 살다가 2년 전 출근 시간이 70분 걸리는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계란 노른자에서 흰자로 이사왔느니 어쩌니 하다가 몇달 지나니 불만이 쏙 들어갔습니다. 매일 북한산의 심기를 살피는 재미에 푹 빠졌거든요. 특히 오후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바위의 음영이 또렷해지며 오랜 세월 바람과 물이 다듬은 세공품 같은 장관이 펼쳐집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다 보면 고향은 어딘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또 생일은 언제인지 알고 싶어집니다. 북한산도 마찬가지였어요. 알아보니, 북한산은 지금으로부터 1억7천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꼴을 갖췄대요. 북한산의 형제는 같은 화강암 암반에 자리 잡은 인왕산 북악산 관악산이고요, 암릉의 굴곡은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겪으며 암석 표면이 양파껍질처럼 떨어져 나오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험한 바윗길만 나오면 쩔쩔매는 나로선 결코 오를 수 없는 절벽이지만 북한산이 겪은 오랜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곤 합니다.

금강산 집선봉 암봉을 오르고 있는 이즈미 세이이치(밧줄 잡고 있는 윗사람) 소명출판 제공
금강산 집선봉 암봉을 오르고 있는 이즈미 세이이치(밧줄 잡고 있는 윗사람) 소명출판 제공

‘머나먼 산들’(이즈미 세이이치 지음·김영수 옮김, 소명출판)을 펼친 건 제목만으로도 저자의 아득한 마음이 느껴져서였습니다. 머나먼 산, 이제는 갈 수 없는 산, 어쩌면 끝내 못 갈 것 같은 산.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즈미 세이이치(1915~1970)라는 분을 전혀 몰랐어요. 잠깐 설명해 볼까요. 뉴기니·남미 안데스 일대의 유적과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등 한평생 오지를 돌며 조사 및 연구활동을 한 일본의 대표적 인류학자라고 해요. 그는 일본인다운 정교함(등반계획 및 여행 일정을 엄청 꼼꼼히 세웁니다)과 탐험가다운 모험심(궁금한 건 못 참아요. 지형과 지질을 파악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거나 땅을 파든지 아무튼 뭐든 합니다)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생전의 이즈미 세이이치. 2021년1월28일치 요미우리 신문에 이즈미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소명출판 제공
생전의 이즈미 세이이치. 2021년1월28일치 요미우리 신문에 이즈미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소명출판 제공

이즈미의 그런 정체성을 형성한 건 바로 ‘조선의 산’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교수로 임용받은 아버지를 따라 11살부터 서울에 살면서 소년 시절부터 한반도의 산을 누볐어요. “조선 사람들은 산을 숭배하고 때로 신에 비유했던 것 같다. 조선의 대중들은 자연을 좋아했다. 봄이 되면 봄나물을 뜯으러 나간다든지 음식을 준비하여 약수라는 깨끗한 물이 솟는 아름다운 계곡에서 노니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이즈미는 자동차 운전이 위태로워 싫고, 스케이트도 어설프고, 야구도 싫어했다는데 어쩐 일인지 험하고 높은 산을 오르는 위험한 일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습니다.

광고

“(나와 친구들은) 특별한 사연도 없이 서로 친하게 되었다. 그 후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서 절간이나 골짜기에 1박 하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바위 오르기를 즐겼다. 우리에게는 숙달된 리더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바위 오르기 기초를 배웠다. (…) 책과 경쟁이라도 하듯 바위 오르기를 배운 것을 나는 잘했던 일로 생각하고 있다. 전혀 미지의 기술을 한걸음 한걸음 습득해가는 것은 그 자체가 탐험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집의 벽이 새까매질 정도로 클라이밍 연습을 하고, 아무도 등반한 적 없는 백운대 루트를 궁리하고, 책으로 빙벽등반법을 익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지 않나요. 십대 끝자락부터는 30kg 배낭을 메고 겨울 금강산에 오르고, 지리산 연봉을 걷고, 한반도에서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관모봉에 도전하고, 한라산의 풍광에 넋을 잃습니다.

1935년 1월 한라산에 오른 이즈미 일행은 정상의 백록담 근처에 캠프를 세웠다. 소명출판 제공
1935년 1월 한라산에 오른 이즈미 일행은 정상의 백록담 근처에 캠프를 세웠다. 소명출판 제공

그리고 그만, 겨울 한라산 등반에서 친구를 잃습니다. 등반대장이었던 이즈미는 마음이 쪼그라듭니다. 사람들이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당사자는 알아요. 슬픔과 비난이 뒤엉킨 타인의 시선은 불화살이 되어 심장을 태웁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위로를 받고 싶다는 심정도 사치로 느껴져요. 그리고 봄이 되어 눈이 녹자 친구가 나타납니다. 산장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서 잠자는 듯한 모습이었죠.

“제주도에서의 조난은 나의 일생을 크게 바꾸었다. 조선 사람들의 사고 체계와 생활 방식을 나는 잘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북조선, 금강산과 경성 부근의 산들을 걸으며 조선의 산촌과 농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생활을 함께하고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조난을 통해서 제주도 사람들과 생활을 같이하고 심방(제주도 무당)의 신탁도 들었다. 눈 속에 쓰러진 친구가 살아 있다는 신탁은 들어맞지 않았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와 사고 체계가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논리나 사고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실하게 되었다.”

친구의 혼이 그를 불렀던 걸까요, 이즈미는 이후 제주도 연구에 빠져들었고, 그의 조사는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삶을 기록한 소중한 자료로 남았습니다.

이즈미가 한창 산에 올랐던 1930년대 일본은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기에 혈안이었고 유럽에서처럼 ‘알피니즘’ 열풍이 강하게 붑니다. 일본 청년들은 한국과 일본의 최고 난도 봉우리에 오르고, 당국의 협조를 얻어 백두산에 가고, 히말라야에 도전합니다. 조선에 살던 조선인은 전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조선에 살던 일본인도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세계 오지를 떠돌며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이 ‘변방의 감각’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군에 징집되고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한일 양국의 왕래가 끊어지자, 조선의 산들은 더는 되돌아갈 수 없는 청춘처럼 머나먼 산으로만 남게 됩니다.

광고
광고

사실 이 책은 풍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나 등반의 묘미를 자세히 담고 있진 않아요. 그러나 건조한 문장 사이로 제 조국이 뺏은 땅을 사랑한 경계인의 복잡다단한 정서가 배어 나옵니다. 아이누 민속연구를 하러 홋카이도에 갔다가 ‘우리의 가난과 치욕을 드러낼 생각이냐’는 한 여인의 일갈에 모든 조사를 중단하는 그의 모습에선 압도적인 푸른 빙벽을 마주하고 허리를 숙이는 젊은 시절의 장면이 겹쳐집니다.

나는 알피니스트나 클라이머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트레커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산에 끌리는 걸까요? 왜 난데없이 일본인의 등산 기록에 빠져든 걸까요? 나 또한 스무살을 갓 넘겼을 때 가까운 사람을 급작스레 잃어본 적 있습니다. 말뚝에 목줄이 걸린 가련한 존재처럼 땅 밑으로 꺼져 드는 우울의 원점으로 곧잘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의식적 노력을 통해 헤쳐나오곤 했지만, 어쩐지 나의 운명은 우울함이 박혀 있는 말뚝과 내내 함께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은 이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불안을 다독였어요. 수십억년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저 큰 존재를 바라보면, 마음의 잡음이 잦아듭니다.

매일 아침 북한산 봉우리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백운대에 걱정 한 톨, 의상봉에 시름 한 톨, 문수봉에 불안 한톨 올려놓다가 눈길이 비봉에 이르면 전철은 지하 터널로 빨려들어 갑니다. 오늘도 북한산 마음의 선반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믿어보는 순간입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