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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추적60분’ 제작진이 28일 편성 삭제에 항의하며 한국방송 신관 7층 편성전략본부장실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제공
한국방송(KBS) ‘추적60분’ 제작진이 28일 편성 삭제에 항의하며 한국방송 신관 7층 편성전략본부장실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제공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극우 세력에 대한 탐사보도를 담은 한국방송의 시사고발프로그램 ‘추적60분’ 방송분이 방영을 하루 앞두고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편성표에서 삭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방송이 극우 시위대를 자극해 한국방송에 난입할까 봐 우려된다는 것이 제작진이 전해 들은 사쪽의 편성 삭제 이유다. 한국방송 사쪽은 ‘삭제가 아닌 순연’이라고 했으나 한국방송 피디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등은 일제히 “심대한 제작자율성 파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추적60분’ 제작진은 28일 성명을 내어 이날 밤 10시 방영 예정이었던 ‘추적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계엄의 기원 2부’ 방송이 하루 전인 27일 편성표에서 갑작스럽게 삭제됐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다룬 전편 ‘선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21일 방송)이 최근 몇년 사이 ‘추적 60분’ 최고 시청률(6%)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받았고, 이번 편도 스카이데일리 ‘중국인 간첩 부정선거 개입’ 허위보도의 출처에 대한 탐사보도를 담아 사내 기대가 높았으나 일방적인 삭제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 제작진 설명이다.

제작진은 사쪽이 편성 삭제 사유로 두가지를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다음 달 1일 방영 예정이었던 ‘다큐온’ 3·1절 특집 내용이 좋아 편성을 앞당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방송 피디협회 설명을 보면 편성 삭제 통보가 이루어진 것은 27일 오후 4시 무렵이고, ‘다큐온’ 3·1절 다큐멘터리가 입고된 시각은 그날 저녁 7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피디협회는 ‘다큐온’ 제작진도 3·1절 당일 방송을 전제 하고 자막과 원고에 ‘오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제작을 마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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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3·1절 광화문·여의도에서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예정된 가운데 ‘추적60분’ 방송이 극우 단체를 자극해 한국방송에서 난동을 부릴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피디협회는 “그런 상황을 막는 것이 회사의 역할인데 지금 회사는 방송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적60분’ 제작진 역시 “공영방송 케이비에스가 일부 폭력성향 단체의 공격이 두려워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맞나”라며 “서울서부지법 판사들이 폭동을 예상하여 난입을 피하고자 윤석열 대통령 구속을 미루는 꼴”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지난 21일 방영한 ‘추적60분 선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 계엄의 기원 1부’ 방송 유튜브 다시보기 섬네일. 28일 불방되는 회차는 이 방송의 후속편이다.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지난 21일 방영한 ‘추적60분 선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 계엄의 기원 1부’ 방송 유튜브 다시보기 섬네일. 28일 불방되는 회차는 이 방송의 후속편이다.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제작진과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등은 이날 한국방송 사옥 안에서 경영진을 향한 항의 피케팅 시위를 벌였으나 편성이 복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편성 삭제 건은 명백한 편성규약 위반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제작자율성 파괴행위”라며 “‘추적60분’이 방영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 편성규약(6조)에는 제작 책임자가 방송 적합성을 판단하고 수정할 때 제작진과 성실하게 협의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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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한국방송에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집으로 제작된 ‘다큐 인사이트’ 방송이 “4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되거나 ‘낙하산 진행자 외압 논란’이 불거진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무기한 중단되는 등 사쪽에 의한 제작자율성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방송 사쪽은 이날 오후 관련 입장문을 내어 “3·1절을 앞두고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오늘 밤 10시 ‘다큐온 3·1절 기획 잊혀진 독립운동가 태극기’ 편을 편성했다”며 “이에 따라 ‘추적 60분’ 편성은 순연됐다”고 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