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18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이 묻혀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022년 6월18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공동묘지에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이 묻혀 있다. 부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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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금지국가를 취재할 때 외교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2008년 개정 여권법 시행 이후 세계 분쟁 지역을 취재하는 한국 언론인 숫자가 가파르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취재 허가제’ 탓에 위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관계 법령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5일 외교부의 ‘연도별 취재·보도 목적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현황’(2013∼2022)을 보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9년 동안 외교부 허가를 받아 여행금지국가를 취재한 언론인은 23명에 불과했다. 한 해에 4∼8명 수준이었고, 아예 한 명도 없는 경우도 5번(2015, 2017, 2019∼21)이나 됐다.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 때만 해도 95명의 종군 기자가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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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국제적으로 분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굵직한 사례만 꼽아봐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돈바스 전쟁(2014)부터 시리아 내전(2011∼), 예멘 내전(2015∼),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2020) 등이 있었다. 이들 지역은 모두 현재까지 외교부에서 지정한 여행금지국가다.

2007년 샘물교회 선교사 피랍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여행금지제도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당시 여권법에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이 발생한 위험 국가에 대해 방문을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조항(17조, 26조)이 신설됐고, 취재·보도 등 일부 예외적 목적에 한해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후 분쟁 지역을 취재하는 모든 길은 외교부를 통하게 됐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언론 활동이 정부의 관리 아래 놓이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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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4일 아프간 인질 현상 시한을 넘긴 시간 경기도 성남 분당 샘물교회 사무처장 권혁수(오른쪽) 장로가 피랍자 석방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7월4일 아프간 인질 현상 시한을 넘긴 시간 경기도 성남 분당 샘물교회 사무처장 권혁수(오른쪽) 장로가 피랍자 석방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상의 취재 허가제가 도입되자, 언론사 스스로 분쟁 지역 취재를 꺼리는 효과를 낳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장기간 누적된 위축 효과로 본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여권법 개정 이후 취재가 어려워졌고, 이런 제도를 핑계 삼아 언론사도 고비용∙고위험 취재를 줄였다. 그 상호작용이 취재 위축 효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여권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열흘 전 이미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면서 한국 언론은 약 3주 동안 누구도 현장으로 갈 수 없었다. 3월10일에야 외교부는 취재 목적 방문을 위한 신청 조건을 마련했고, 한국방송(KBS) 등이 처음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체류 기간 제한(2박3일)으로 현장 취재진이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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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외교부가 낸 취재 신청 안내 공문을 보면 취재진의 활동을 제약하는 조건들이 빼곡하다. 2022년 3월10일 첫 안내문에서는 체류 기간을 3일 이내로, 인원은 4명 이내로 제한했고, 대상은 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한정했다. 방문 가능한 지역도 전선 반대편 끝의 체르니우치주 한 곳이었다. 현장 기자들의 비판이 빗발치자 외교부는 조건을 일부 완화했고, 이후 우크라이나를 방문 취재한 언론인 수는 89명(2022년)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를 맞아 집회를 벌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뉴스
지난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를 맞아 집회를 벌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뉴스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지난 2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를 맞아 열린 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서 있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지난 2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를 맞아 열린 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서 있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 한겨레에 “요건에 맞게 취재 신청을 하면 거의 허가를 낸다. 불허되는 건수는 미미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속 언론사가 없는 프리랜서 언론인들에게 분쟁지역 취재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재직증명서를 내지 못하면 취재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방송보다 약 2주 앞서 한국 언론인 중 최초로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했던 사진작가 장진영(44)씨는 귀국한 뒤 여권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 형사처분을 받았다. 벌금형에 불복한 그는 정식 재판 절차를 통해 제도의 부당함을 밝히기로 했고,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재판은 해를 넘겨 진행 중이다.

장씨의 변호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지난 23일 6차 공판을 마친 뒤 “우크라이나 이후 제도 변화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사실상 취재 허가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허가 조건으로 취재계획서까지 내야 하는데 이것은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사전 데스킹과 같다”고 주장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에도, 한국 언론의 전쟁 지역 취재 노하우, 인프라가 끊겨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도로 언론 취재를 통제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국제기자연맹은 지난해 장진영 작가에 대한 연대 성명을 게재하며 “분쟁 지역 취재에 대해 허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유럽평의회는 2022년 3월 ‘분쟁과 침략 상황에서의 저널리즘’이라는 결의문을 발표해 국가는 전쟁 지역 취재에 대한 언론의 접근을 보장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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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작가가 지난해 6월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장진영 작가가 지난해 6월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장씨의 재판이 진행 중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8부(재판장 이정훈)는 다음 기일(4월12일)까지 위헌법률심판제청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신청이 인용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여권법의 위헌성을 다투게 된다.

고양/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