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하루 전날 명태균씨와 한 통화에서 ‘김영선 전 의원의 경남 창원의창 공천을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지시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의 음성 파일이 31일 공개됐다. 실제 다음날 국민의힘은 김 전 의원의 공천을 확정 발표했다. 야당은 “당선인의 공천 지시가 대통령 임기 중 실행됐다”고 지적했다. 주장대로라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헌법과 공직선거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 우리 헌정이 실로 엄중한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은 음성 공개 직후 “명씨가 김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이 당시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공천 개입은 부인한 것이다. 녹취가 있으니 말했다는 건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통령이 정치 브로커를 무마하기 위해 면피용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앞뒤 살필 겨를이 없겠지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해명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이 창피스러워 고개를 못 들 지경이다.
지금까지 나온 녹취들을 보면, 명씨는 당시 여러번 “대선 기간 3억6천만원을 들여 윤 대통령을 위한 여론조사를 수십차례 실시해 보고했고, 김영선 공천은 그 대가”라고 했다. 공천 1주일 전에도 “김건희 여사가 ‘김영선 공천은 자기 선물’이라고 했다”고 과시했다. 이날 공개된 또 다른 음성 파일에서도 명씨는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해 “지 마누라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님이 놀라서 전화 오게끔 만들고,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고 다그치자, 윤 대통령이) ‘나는 분명히 했다’고 변명하는 거야”라고 주변에 설명한다. 대통령실은 또 부인하겠지만, 대화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사실이라면 권한 없는 김 여사를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 공천 개입을 이끌어낸 국정농단에 해당된다.
이날 육성 공개로 “윤 대통령은 대선 경선 이후 명씨와 연락한 사실이 없다”는 대통령실 기존 해명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러니 대통령실 말을 누가 믿겠는가. 이제 수사를 통해 밝히는 수밖에 없다. 검찰 정권에서 ‘충견’이 된 검찰보다 중립적 특검이 수사해야 국민이 납득할 것이다. 윤 대통령도 더 이상 대통령실 직원들도 믿지 않을 해명을 늘어놓지 말고,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청하고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