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할 것”이라는 북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긴장 완화에 나서는 대신, 그동안 눈엣가시로 여겨온 9·19 군사합의를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에 돌입했다. 이 조처가 이뤄지면 남북이 2018년 4월 말 ‘판문점 선언’ 등을 통해 중단하기로 한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훈련도 가능해진다. 윤 대통령은 남북 간 큰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이 위험한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긴장 해소를 위한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국가안보실은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최근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결정이 이뤄지면, 국가안보실이 전날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라고 말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이 6년 만에 재개될 수 있다.
애초 이번 사태는 한 탈북민단체가 지난달 10일 북에 30만장의 대북전단 등을 띄워 보내며 시작됐다. 그러자 북 국방성이 지난달 25일 보복을 다짐했고, 지난달 28일 밤부터 “휴지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에 담아 남으로 날려 보냈다. 북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는 무책임하고 지저분한 도발임에 틀림없지만, 남이 일부 원인을 제공한 면이 없진 않다. 게다가 북이 2일 밤 오물 풍선 살포를 멈추겠다며 물러선 만큼, 원만히 수습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다. 구두경고로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결’로 가는 길을 택했다. 오물 풍선 살포는 명백한 잘못이지만, 이를 9·19 군사합의 폐기로 맞서는 건 과잉이다. 너무 무모하고 위태로워 ‘채 상병 사건’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국내 정국을 돌파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확성기 방송은 오랫동안 활용해온 대북 심리전 수단이지만, 북을 지나치게 자극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태 이후 방송이 재개됐을 땐 북이 시설을 조준 사격하는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한반도는 미-중의 전략 경쟁과 남북의 오랜 갈등이 중첩된 세계의 대표적 ‘화약고’다. 핵무장에 성공한 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있다. 정부는 무모한 강 대 강 대결에 나서는 대신 북과 사태 수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쓸데없는 기 싸움 벌이다, 정말로 큰일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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