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지반에 박아 넣은 구조물인 파일의 하중을 견디는 힘을 확인하는 기계를 필자(왼쪽 셋째)가 살펴보고 있다. 필자 제공
건설 현장에서 지반에 박아 넣은 구조물인 파일의 하중을 견디는 힘을 확인하는 기계를 필자(왼쪽 셋째)가 살펴보고 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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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진 | 여성건축기사

 “거 아무 데서나 훌렁훌렁 옷 갈아입지 좀 말라니까요.”

“아니 화장실이 좀 멀어야지. 근데 나한테 관심 있나 봐, 자꾸 나 옷 벗을 때마다 쫓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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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반장님한테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내일은 비(B)구역 오전 중으로 마무리하고 에이(A)구역 잔손 보기까지 해줘요.”

폭염이었다. 온몸이 젖었다 마르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흘러내린 땀 때문에 눈은 따갑고 안전모 턱끈에 쓸린 귀밑이 벌겋다. 고소작업용 안전벨트를 맨 몸은 무겁고 딱딱한 안전화 때문에 발바닥이 쿡쿡 쑤신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현장은 오후 4시쯤 마무리된다. 작업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물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는다. 나는 그들을 보내고 각종 안전점검을 한다. 자재, 장비, 공도구(연장), 전기분전반 보관 상태, 가설 시설물 고정 여부 등등을 살핀 다음 현장 사무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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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차 건축기사다. 많은 프로젝트와 현장들을 거쳐왔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터에는 살아남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은 언제나 난감하다.

“그러니까 말이죠. 건물이 세워지는 모든 단계를 지켜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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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파는 데 필요한 장비를 현장으로 부르고, 철골 설치 뒤 수직도 검사를 하고, 콘크리트 타설 계획을 세우고, 건물의 에너지 설계와 관련 있는 유리창 열관류율(열을 전달하는 능력)을 계산하고, 건물 내부 타일과 조명기구가 보기 좋게 수직 수평이 맞도록 관리한다. 안전을 챙기고, 스케줄을 짜고, 예산을 관리한다.

건설 현장에서 나와 같은 여성 엔지니어를 마주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래도 요즘은 화재감시자나 신호수, 도배, 도장 등의 작업에 투입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꽤 있다.

“아줌마, 여기 커피는 어디서 마시면 돼요?”

남성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 노동자들 또한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데 그건 그들 또한 현장에서 적절한 호칭이 아닌 ‘아줌마’로만 불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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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 현장 관리잔데요. 편히 과장님이라 부르면 됩니다. 커피는 저기 근로자 휴게실이 있으니 쓰시면 돼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경우 도면이 현장과 다르거나, 자재가 잘못 반입되어 왔거나, 작업 팀들이 싸운다든가 등등의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는 중이므로 설명할 여유는 많지 않다. 그렇게 또 한번 우리는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놓친다.

예전에는 현장에 여성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공중화장실까지 가기 싫어 더운 날에도 물을 적게 마시고 점심을 건너뛰었다. 또 대부분의 안전용품은 남성 평균 몸에 맞춰져 있어 여성의 몸에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침 안전조회(TBM)를 실시할 때면 수십 수백명의 눈길이 나에게 꽂힌다. 그중에는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들도 분명 있다. 그들에게 나는 같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아닌 그냥 ‘여성’일 뿐이다. 현장의 일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런 시선들과 일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한다. 나 자신의 능력을 매번 증명하고 나 또한 이 현장에서 당신의 동료라는 것을 인지시켜야만 비로소 업무를 논의할 수 있는 수평적 관계로 넘어간다. 그렇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지워야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이란 점이 자꾸 환기된다.

그럼에도 공간을 만드는 건 재미있다. 투디(2D·평면) 종이 위에 그려진 설계도를 해석하고 스리디(3D·입체)로 구현해내는 일은 희곡 대본을 연극 무대로 올리는 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사람은 소외되곤 한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모두가 외치고 법규들은 나날이 강화되지만, 현장의 분위기와는 괴리가 있다. 건물이 완공되어야 하는 날짜가 있기 때문이다. 해당 날짜에서 하루라도 지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오늘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작업이 고스란히 지연되고 그 작업을 다시 조율하기 위해 더 많은 품이 든다는 걸 모두가 안다. 작업중지권이 있다고 하지만 사례를 들어본 적은 없다. 올 상반기에도 건설 현장에서 많은 사망 사고가 있었고, 나 또한 현장에서 아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포클레인 버킷(삽)이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가거나 코앞에서 장비가 터진 적도 있었다.

하루하루의 안전 수칙이 지켜지는 문화와 함께 성별과 상관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들이 필요하다. 여성은 물론, 모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건설 현장을 꿈꾼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