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2024년 살인 혹은 살인미수 등 사건의 여성 피해자는 333명에 이른다. 그중 108명이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성폭력 등의 피해자였다. 이는 올해 7월10일 경찰청에서 발표한 최초의 공식 통계다. 그 전까지는 민간 여성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가와 시민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하나하나 찾아냈어야 했다. 지난해 11월25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추방주간에 15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한 여성 및 주변인 1672명의 죽음을 추모하는 거리 캠페인을 했다. 가해자는 소개받은 남자, 가게 손님, 전 배우자, 아빠, 직장 동료였다. 범행 동기는 자는데 불을 켜서, 말을 듣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해서, 전화 통화를 오랫동안 해서 등이었다. 죽일 수 있으니까 죽였다는 얘기다.
경찰의 방치가 한몫을 거들었다. 지난 5월12일 화성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 살인 사건은 경찰이 공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30대 여성 ㄱ씨는 전 연인 ㄴ씨에게 6년 동안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에 시달리다가 결국 살해당했다. 살해 전 반복적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고소장을 제출했고 신변의 위협을 호소하며 가해자의 구속을 청원했으나 경찰은 피해자의 호소를 무시했고 그대로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워치마저 회수를 통보했다고 밝혀졌다. 나는 정확히 이것과 거의 똑같은 양상의 사건에 대한 사례 연구를 20년 넘게 계속 읽고 있다. 왜 상황이 변하지 않는 걸까.
세계 어디에서나 여성 구타는 여성 살해에 선행하여 발생하고 있고, 이는 흔히 ‘사랑싸움’으로 분류되며, 가해자 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화해했다고 공표되며 경찰은 이를 믿고 상황을 방치한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아주 오랫동안 비슷한 사건이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확신컨대 경찰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다. 아는데도 이러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개인 간의 사적인 일에 공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앎’이 문제라는 얘기다. 그 결과 가부장제 아래서 ‘집’은 여성에게 가장 치명적인 장소가 되었고, 사랑은 너무 치명적인 감정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들은 자신과 헤어지고도 행복해 보여서, 잘사는 것 같아서 피해자를 죽이고 때렸다고 말한다. 상대의 행복을 우선으로 삼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는 얘기다. 2020년 충남 당진에서 발생한 교제폭력 사건으로 사망한 두 딸의 아버지 나종기씨는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어떻게 죽일 수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팀이 펴낸 책 ‘헤어지다 죽은 여자들―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폭력을 말하다’에 나오는 인터뷰 내용이다. ‘사랑싸움’이 아니라 폭력으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좋아할 수 있도록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성과 사랑은 유독 신비화되고 낭만화된 영역이다. 고통이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미화하거나 상대방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학대적인 관계를 정당화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교제폭력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앎’이 필요하다.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는 성평등과 인권에 기반해 몸, 관계, 가치관, 문화, 다양성, 의사소통 등을 가르치는 아동 청소년 대상의 포괄적 성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의 지침은 정확히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서울시의 청소년 성교육 방향을 수립하는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 제작 티에프 자문위원에는 ‘성경적 성교육’을 표방한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성경적 성교육은 쉽게 말해 ‘혼전 순결 교육’이다. 이들은 포괄적 성교육이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들이 성에 대해서 가지는 강박적 사고방식과 결혼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보면, 배움이 필요한 건 아동과 청소년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성인을 위한 아주 흥미진진한 성교육 책 ‘나는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한채윤 지음)가 출간됐다. 섹슈얼리티를 전공한 나조차 잘 몰랐던 몸과 건강, 관계에 대한 풍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이 걱정되는 어른들에게 특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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