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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2025 KOREA 누리집 갈무리
APEC 2025 KOREA 누리집 갈무리

김성배 | 인하대 특임교수·전 국정원 해외정보국장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상외교가 속도감 있게 가동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대통령 방미를 통한 한-미 정상회담과 방일도 조기에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9월에는 유엔 총회 정상세션, 10월에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올해 정상외교의 하이라이트는 10월31일~11월1일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가 될 것이다. 정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성과가 집대성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도 경주 아펙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은 주로 경주의 열악한 인프라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여부, 정상회의 공식 공동성명 채택 등 주로 의전과 공식 의제 문제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펙 정상회의의 명실상부한 성공을 위해서는 이를 넘어서 전략적 측면에 대한 고려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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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가 주최하는 아펙 정상회의인 만큼 지난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넘어서는 포괄적 지역전략이나 지정학 구상이 천명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시아가 실종되고 대륙이 삭제된 기형적 지역전략으로서 역대 정부의 대륙 지향 지정학 전통으로부터의 중대한 이탈이었으며, 사실상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창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판박이였다. 아펙 정상회의는 대륙과 해양을 모두 품는 지정학 구상을 천명하기에 최적의 계기로 판단된다. 유라시아-태평양 이니셔티브를 담은 대통령 연설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둘째, 이번 정상회의의 공식 의제와는 별도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특별성명이 채택될 필요가 있다. 아펙 정상회의에는 북핵 문제의 직접 이해 당사국들인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에 대한 공동성명이 채택되면 무게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북-러 밀착과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포함시키기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최국으로서 최대한 합의 도출을 시도해야 한다. 최소한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방지를 위한 단계적이며 실용적인 군비통제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 도출해야 한다.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에 대한 지지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필요성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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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우리 외교의 최대 과제인 한-미 동맹의 공고화와 한-중 관계의 성숙한 발전의 양립 가능성을 적극 탐색해야 할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 ‘안미경중’ 자세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최우선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도 불가능한 대중 디커플링을 한국에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의 조화로운 병행 발전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찾아야 할 길이다. 이번 아펙 정상회의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이다. 아펙 정상회의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배치하여 한-미 동맹이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임을 과시하는 한편, 회의 직후에 시진핑 주석의 서울 공식방문을 성사시킨다면 좋은 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 문제의 창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주 아펙 정상회의에 트럼프·시진핑·푸틴 세사람이 모두 참석한다면, 전쟁과 분열로 얼룩진 국제정세에서 외교적 빅이벤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대상이기 때문에 당사국인 한국 방문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안보리 결의를 통해 체포영장을 일시 면제하는 방안이 있으나 트럼프가 동의한다고 해도 영국, 프랑스의 반대가 예상된다. 지난해 푸틴의 몽골 방문 때 체포영장을 무시한 선례가 있으나 외교안보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의 선택지가 되기는 어렵다. 지난 6일 브라질에서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의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대표로 참석하고 푸틴이 화상으로 참여한 방식을 원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미·일 등과의 사전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아펙 정상회의까지는 아직 3개월여 남아 있지만 이재명 정부의 임기 첫해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정교한 전략적 설계하에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