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5일 오후(현지시각) 대관식이 거행될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에서 런던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5일 오후(현지시각) 대관식이 거행될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에서 런던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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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이 영국 형사사법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에서 150년이나 이어져온 제도를 뒤엎은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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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22일 새벽, 런던 동남부 캣포드의 한 주택에 불이 났습니다. 소방관들은 2층에서 맥스웰 콘페이트가 목졸려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콘페이트가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이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습니다. 둘은 몇해 전 알게 된 사이로, 여장을 하는 남성들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콘페이트가 집을 옮기려 하자 집 주인이 반대했다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그러나 집 주인은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경찰 수사가 난관에 빠진 가운데 이틀 뒤 인근 철길 주변의 빈집 등에서 방화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방화 용의자로 청소년 3명이 붙잡혔습니다. 심한 학습장애로 읽고 쓸 줄을 몰랐던 18살 콜린 레티모어와 15살 로니 리튼, 14살 아메트 살리였습니다. 경찰의 추궁 끝에 레티모어와 리튼은 콘페이트를 살해하고 방화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살리는 방화만 인정했습니다.

세 소년은 아무런 도움도 없이 경찰 신문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강압이 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가족들은 콘페이트 사망 추정 시각인 4월21일 저녁에 이들의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쪽의 사망 추정 시각이 4월22일 새벽으로 변경됐고, 세 소년은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1974년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새 내무장관과 해당 지역 국회의원 등이 사건을 재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콘페이트의 사망 추정 시각이 4월21일 저녁이라는 법의학자들의 소견이 제시됐습니다. 결국 세 소년은 다시 재판을 받게 됐고 1975년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1980년, 경찰은 과거 교도소에서 콘페이트와 가깝게 지냈던 더글러스 프랭클린이란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수사 초기에 세 소년을 범인으로 단정하지 않았다면 프랭클린이 충분히 용의선상에 올랐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랭클린은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0대 소년의 칼부림으로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인 지난 7월31일(현지시각) 런던 의회광장에서 벌어진 시위를 경찰이 막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10대 소년의 칼부림으로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인 지난 7월31일(현지시각) 런던 의회광장에서 벌어진 시위를 경찰이 막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경찰이 수사·기소 독점하던 150년 전통 탈피

여기까지는 억울한 피고인이 누명을 벗은 이야기 또는 수사기관의 무리한 강압 수사에 관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오히려 더 극적인 사례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내무장관은 재수사 지시를 내렸음에도 경찰이 뭉그적거리자, 전직 법관이자 옥스포드대 울프슨칼리지 학장을 지낸 헨리 피셔로 하여금 사건 수사의 전 과정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1977년 조사팀은 경찰 수사·기소의 문제점을 밝히고 전면적인 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 위원회 구성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1979년 왕립형사절차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위원장인 시릴 필립스 전 런던대 부총장의 이름을 따 ‘필립스위원회’로 불립니다. 필립스위원회는 3년간 관련자 인터뷰와 미국·캐나다 등 외국 실태 조사, 50차례의 회의를 거쳐 1981년 범죄 수사·기소와 피의자 권리 등에 관한 제도 개혁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제시된 게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입니다.

이때까지 영국에서는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했습니다. 놀랍게도 영국에는 ‘검찰’이라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중세 이래 형성된 영국의 전통 법인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형사 사건도 민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개인 간의 분쟁으로 봤고, 범죄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 직접 법원에 제소하는 ‘사인소추’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다 1829년 근대적 경찰 제도가 도입되면서 개인을 대신해 경찰이 범죄 사건을 수사·기소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경찰이 변호사를 고용해 기소 및 재판 관련 업무를 맡기다가 점차 경찰 내에 변호사들로 이뤄진 기소 담당 부서를 두는 식으로 변화했습니다. 기소에 관한 주도권은 물론 수사를 한 경찰이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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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필립스위원회 보고서.
영국 필립스위원회 보고서.

필립스위원회는 이렇게 경찰이 수사·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게 무리한 기소의 원인이 된다며 ‘기소는 수사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위원회 보고서의 한 대목입니다.

“고용된 변호사들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부족한 사건을 담당 경찰관이 밀어붙여 기소한 사례들이 확인된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혐의를 적용해 기소가 이뤄지기도 한다. 기소 과정에서 수사관의 역할과 법률가의 역할은 분리돼야 한다. 수사 담당자는 불가피하게, 다른 부적절한 동기가 없더라도, 피의자의 유죄에 대한 심증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피의자의 결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타나도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수집한 유죄 증거의 확실성을 과잉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제보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위원회는 수사와 기소 권한을 나눠 ‘견제와 균형’ 속에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수사기관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기소 기능을 담당하는 독립적 기관의 창설을 제안했습니다. 범죄 대응의 효율성 저하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도 벌어졌지만, 결국 1985년 영국의 검찰에 해당하는 기소청(Crown Prosecution Service)을 신설하는 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고 1986년부터 기소청이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영국 기소청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영국 기소청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기소청 신설 이어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 2차 개혁

개혁이 단번에 완전하게 이뤄지기는 힘듭니다. 필립스위원회는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천명했지만, 실무적으로 완전한 분리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원회는 전통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초기 기소청은 이 안을 따라 창설됐습니다. 즉 경찰이 수사를 마친 뒤 기소 개시 여부를 일단 결정하고, 이후 기소청이 사건을 넘겨받아 재검토한 뒤 경찰의 기소 내용대로 재판을 계속 진행할지 아니면 기소 내용을 변경하거나 아예 취소할지 결정하는 구조였습니다. 이 정도 변화만으로도 경찰의 반발이 컸고, 새로운 제도 아래서 경찰과 검사 사이의 알력도 심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무리한 기소를 적절히 통제하기가 여전히 어렵다는 게 여러 사례로 확인되면서 더 과감한 개혁이 뒤따랐습니다. 1999년 대법원장·내무장관·법무장관이 로빈 올드 대법관에게 형사절차 개혁을 위한 전반적인 연구를 맡겨 2001년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경찰이 맡았던 기소 개시 결정 자체를 기소청이 가져와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시스템이 기소의 정확성을 개선하지 못했다. 기소청이 더 이른 단계에 더 강력하게 개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기소청은 경찰이 제시한 혐의와 증거를 검토함으로써 기소의 내용을 결정하는 최종적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기소의 시작 단계부터 통제권을 갖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분명 더 효율적일 것이다.”

이에 따라 2003년 법 개정으로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기소청이 온전히 분담하게 됐습니다. 경찰은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기소청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합니다. 세 소년이 억울하게 처벌받은 지 30년 만에 이 사건의 교훈으로 새겨진 수사·기소 분리가 명실상부하게 이뤄진 것입니다.

‘한국판 콘페이트’ 무수했으나 변화는 없었다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미 경찰과 검찰이 따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수사·기소의 역할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이 수사까지 아우르면서 검찰은 기소 기관이 아니라 수사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이전의 영국 경찰과 한국 검찰의 위상이 비슷합니다. 그로 인한 폐해는 과거 영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례 하나를 들겠습니다. 콘페이트 사건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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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소녀 살인사건’ 피의자로 몰린 10대 청소년들이 2008년 1월29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 법무법인 경기 박준영 변호사 제공
‘노숙소녀 살인사건’ 피의자로 몰린 10대 청소년들이 2008년 1월29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 법무법인 경기 박준영 변호사 제공

2007년 5월14일 새벽, 경기도 수원시 한 고등학교 건물에서 신원미상의 15살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나중에 가출 청소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경찰은 낡은 옷차림을 이유로 ‘노숙하는 소녀’라고 단정하고 수원역 노숙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습니다. 경찰은 이날 저녁 20대 노숙인 한명과 그의 친구를 체포했습니다. 노숙인의 친구는 지적장애 2급이었습니다. 이들은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알리바이를 주장했지만 경찰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경찰의 강압적인 추궁에 거짓 자백을 했습니다.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이들은 경찰의 강압 조사를 호소했지만 묵살됐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사건의 진범은 수원역의 10대 노숙 청소년”이라는 제보를 받고 다시 수사에 나섰습니다. 검찰은 10대 노숙 청소년 4명을 붙잡아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고문에 가까운 잔인한 폭행을 했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청소년들은 1심에서 징역 2~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 진술조서에는 청소년들이 자백하는 내용만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진술녹화 영상을 확인한 결과 청소년들이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는 장면, 검찰 수사관이 진술 내용을 일러주며 유도하는 장면 등이 드러났습니다. 청소년들은 “검사 아저씨가 겁을 줬다”고 일제히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변호사도 없이 조사받았습니다. 결국 2심 법원은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한 자백 진술은 그 경위에 비춰 볼 때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며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앞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성인 노숙인도 애초 자백 내용과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이 배치되는 등 무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2012년 10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기사 ‘무죄의 재구성-노숙소녀 살인사건’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여러명의 피의자가 살인이라는 중범죄에 대해 일제히 거짓 자백을 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자기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과 가출 청소년들을 상대로 경찰과 검찰이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수사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반인권적 수사는 없었는지 감시·견제해야 할 검찰이 오히려 한 술 더 떠 무고한 청소년들을 진범으로 엮으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검사는 법정에서 “노숙 청소년들은 길거리에서 배운 들고양이와 같은 야생성이 있다”며 범행 가능성을 몰아갔습니다. 기소됐던 청소년은 이 말이 “거리에서 들었던 어떤 욕지거리보다 가슴을 후벼팠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피고인의 인격까지 짓밟는 검찰의 비인간적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형사사법제도의 대실패를 보여준 이 사건은 콘페이트 사건처럼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변화한 것은 없었습니다. 경찰도, 검찰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담당 검사는 서울지검 특수부로 영전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무혐의 처분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무혐의 처분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후에도 검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 역할에는 소홀하고, 스스로 수사기관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무리한 수사·기소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간첩사건 증거를 조작했는데도 검찰이 그대로 기소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씨 사건’은 두드러진 하나의 사례입니다. 검찰은 반성하기는커녕 유씨를 다른 혐의로 ‘보복기소’했습니다. 검찰이 스스로를 국정원 수사를 통제하는 기소기관으로 여긴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검찰이 스스로를 국정원과 한몸인 수사기관으로 여기고 분풀이를 한 셈이니 말입니다. 검찰의 보복기소는 대법원에서 사상 최초로 ‘공소권 남용’이라는 판단을 받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검찰이 정치적·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을 비틀고 덮은 사례도 숱합니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검찰이 잇따라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어떻게 농단하는지 보여주는 절정의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수사·기소 분리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한국판 콘페이트 사건’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둔감했습니다. 2022년 4월 수사·기소 분리 법안이 통과됐지만, 반쪽짜리 법안으로 후퇴한 데다 이후 법무부가 ‘시행령 꼼수’를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늘리는 등 애초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하나의 실패한 사건에서 ‘지금의 형사사법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성찰을 끌어내고 과단성 있게 제도를 변화시킨 영국의 사례를 되새겨보는 이유입니다.

영국 기소감찰청이 2023년 6월 노팅엄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사건에 대한 기소청의 처분 결과를 검토해 지난 3월 공개한 보고서.
영국 기소감찰청이 2023년 6월 노팅엄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사건에 대한 기소청의 처분 결과를 검토해 지난 3월 공개한 보고서.

기소청 감시하는 별도 기관까지 설립한 영국

영국의 제도 개혁은 더 있었습니다. 2000년 기소감찰청(Crown Prosecution Service Inspectorate)을 창설했습니다. 기소청에 대한 정기적 감사와 함께 사회적 이슈가 된 특정 사건 처리에 대한 검토를 수행하는 별도의 독립 기관입니다. 기소감찰청은 매번 조사 내용과 개선 권고 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합니다. 그 이유는 “기소청이 하는 일에 대해 외부에서 책임을 묻고 사회적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의 수사를 기소청이 감시·견제하고, 기소청의 기소를 기소감찰청이 감시·견제하는 겹겹의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목적은 바로 “공정하고 효율적인 형사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기소감찰청은 설명합니다.

수사·기소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말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믿어달라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권한의 오남용을 견제할 충분한 장치가 갖춰져 있어야 그 제도를 통과해 나온 결과를 신뢰할 근거가 생깁니다. 그런 제도 개혁 노력은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