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위키미디어 코먼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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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의 대표적인 두 가지 폐단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명품가방 수수 사건에서 나타나는 ‘봐주기 수사’가 하나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에 대한 ‘먼지털기식 표적 수사’가 또다른 하나입니다. “누구를 수사·기소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검사의 권한에서 가장 위험한 측면”이라는 로버트 잭슨 전 미국 연방 검찰총장의 말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1회 ‘좋은 사람이 좋은 검사도 될 수 있을까’ 참조). 검찰권의 이 위험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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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견제 장치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프랑스 제도에서 한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사·기소권의 분리, 좀더 엄밀히 말하면 수사·기소권의 ‘분점’을 통해 권한 남용을 막는 것입니다. 바로 ‘예심판사’(수사판사)라는 제도입니다.

지난 8월 프랑스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월 프랑스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 로이터 연합뉴스

예심판사는 우리에게 낯선 제도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형사사법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을 읽어본 독자라면 예심판사가 범죄 현장을 살피거나 체포된 뤼팽을 신문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체포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관련 기사에도 예심판사가 등장합니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두로프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사가 아닌 예심판사입니다. 예심판사는 법원에 속해 있으면서도 재판에는 관여하지 않고 수사를 임무로 하는 판사입니다. 그 역할이 우리나라의 특수부 검사와 유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 예심판사”

그럼, 예심판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와는 좀 다른 복잡한 절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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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범죄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3000유로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하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위경죄’라고 하고, 그 이상의 벌금형이나 10년 이하 구금형에 해당하는 중간 수위의 범죄를 ‘경죄’라고 하며, 10년을 넘는 구금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중죄’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경죄와 위경죄는 검사가 경찰을 지휘해 수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중죄를 기소하려면 검사는 반드시 예심판사에게 사건을 넘겨야 합니다. 경죄 중에서도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은 선택적으로 예심판사에게 넘길 수 있습니다. 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대부분 예심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검사가 1차적 조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예심을 청구하고, 이때부터는 예심판사가 경찰을 지휘해 본격 수사에 나섭니다. 예심판사는 직권으로 피의자 신문, 증인 신문, 압수수색, 통신 감청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구속까지도 예심판사가 직접 결정했지만, 2000년 법 개정으로 우리나라의 영장전담판사와 비슷한 ‘석방구금판사’를 신설했습니다. 이후로는 예심판사가 피의자의 구속을 청구하면 석방구금판사가 가부를 결정합니다.

수사가 끝나면 예심판사는 사건기록을 검찰에 보내고, 검찰은 범죄 사실과 적용 법조 등을 기재한 기소장을 작성해 다시 예심판사에게 넘깁니다. 마지막으로 예심판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이 검찰과 다를 때는 예심판사가 결정권을 가집니다. 이로써 예심이 종결됩니다.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면 예심판사의 역할은 끝나고 이후 재판 과정에는 다시 검사가 참여합니다.

프랑스 중죄재판소.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 갈무리
프랑스 중죄재판소.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 갈무리

이렇게 예심판사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맡아 수사하는 수사기관 역할을 합니다. 2022년 프랑스 검찰이 처리한 전체 사건 중에서 예심에 회부된 사건은 약 6%를 차지했습니다(사건 수로는 1만6496건입니다). 예심판사는 직접 수사를 하면서 구속영장 청구를 비롯해 강력한 사법적 권한을 행사합니다. 또한 자신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도 갖습니다. 우리나라 검찰 가운데 주요 사건의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특수부 검사와 비견되는 점입니다. 하지만 압수수색·감청 등을 직권으로 수행하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검찰보다 사법적 권한이 더 강력한 측면도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리얼리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예심판사를 ‘프랑스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왕이든 법무부 장관이든 수상이든 그 어떤 인간의 권력도 예심판사의 권위를 침해할 수 없다. 그의 업무를 방해할 수도 명령할 수도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법에만 복종하는 최고의 권력자다.(발자크 소설 ‘창녀들의 영광과 비참’ 중에서)

‘문어발식 수사’에 대한 통제 장치

그러나 예심판사와 우리나라 검찰 사이에는 차이점이 분명합니다. 예심판사는 우리나라 검찰처럼 수사·기소권을 온전히 한 손에 쥐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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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 절차는 어떤 사건을 수사할지 결정하는 단계, 본격적인 수사 단계, 재판에 넘길지 결정하는 단계, 재판 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중요한 범죄의 경우 1단계는 검찰, 2~3단계는 예심판사, 4단계는 다시 검찰의 소관입니다. 2~3단계에도 검사가 일부 관여합니다. 수사·기소 과정에서 검사와 예심판사가 권한을 나눠갖고 중첩적으로 견제하는 구조입니다.

정의의 여신상. 한겨레 자료 사진
정의의 여신상. 한겨레 자료 사진

우선 예심판사는 수사를 담당하면서도 스스로 수사에 착수할 수 없습니다. 검사가 예심을 청구하면서 적시한 범죄사실에 한정해서만 수사할 수 있습니다. 수사 도중 새로운 범죄사실을 발견하더라도 마음대로 수사를 확대할 수 없습니다. 검찰에 이를 알리고 검찰이 추가로 예심을 청구해야만 수사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새로 발견한 범죄사실이 애초 범죄사실과 관련된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어발식 수사’로 한정없이 수사를 확대하거나 ‘별건 수사’로 피의자를 압박하는 우리나라 검찰식 수사기법(?)에 대한 확실한 통제 장치가 있는 셈입니다.

나아가 프랑스 검찰은 예심판사의 수사가 적법절차를 지키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를테면 압수수색 때 예심판사는 검찰에 알려 검사가 참여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검사는 예심판사의 부당한 수사 방법 등에 대해 상급 법원의 예심수사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해당 증거는 무효가 됩니다. 역으로 검사는 예심 수사 과정에서 진실 발견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처를 취하도록 예심판사에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예심판사의 기소 권한에도 제약이 따릅니다. 검찰은 혐의가 인정돼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는 기소재량권(기소편의주의)을 갖지만, 예심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심판사는 수사 결과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 불기소할 수는 있어도, 증거가 충분한 경우에는 반드시 기소해야 합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검찰과 예심판사가 수사·기소권을 나눠 갖고 이중삼중의 제약과 감시 속에 그 권한을 행사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검찰은 형사 절차의 1~4단계를 모두 담당합니다. 수사·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우리나라 검찰이야말로, 발자크식으로 표현하자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폴레옹 치죄법. napoleon.org 갈무리
나폴레옹 치죄법. napoleon.org 갈무리

프랑스 혁명의 산물, 수사·기소·재판의 분리

예심판사 제도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만들어진 치죄법(형사소송법)에서 유래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반영한 법률 근대화·체계화의 산물로, 형사사법체계에서 권한의 과도한 집중과 남용을 막기 위한 설계였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법관이 어떤 사건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지 결정하고(소추), 혐의를 직접 추궁해 밝혀내고(수사), 그에 따른 형벌을 부과하는(재판) 모든 과정을 도맡기도 했습니다. 치죄법은 소추·수사·재판의 세 가지 형사사법 기능을 분리하는 원칙을 세우고, 검사·예심판사·재판판사 3자 간에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어느 한쪽의 독주를 막고 상호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형사사법 근대화의 핵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소추·수사·재판 가운데 재판 기능을 별도의 기관(법원)이 맡아야 한다는 점은 우리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소추·수사 기능은 하나의 기관(검찰)에 맡기는 것을 당연시해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적 형사사법제도의 시초라고 할 프랑스 치죄법에서 소추·수사 기능을 분산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치죄법 제정 당시에도 소추·수사 기능을 통합하자는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치죄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형사절차의 신속성 및 효율성 강화를 위해 범죄를 소추하는 검사가 직접 수사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치죄법 초안에 반영되기도 하였으나, “소추권자로서 재판 당사자인 검찰에게 규문행위(수사)를 하도록 두는 것은 정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협하는 폭군을 만들어낼 것이다”라는 우려와 함께 관련 조항은 삭제되었다.(유주성, ‘프랑스 예심판사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 2017)

이같은 문제의식은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제정 과정에서도 놀랍도록 똑같이 재현됐습니다. 1954년 국회 형사소송법안 공청회에서 검사 출신의 엄상섭 의원이 한 발언입니다.

기소권만을 가지고도 강력한 기관이거늘 또 수사의 권한까지 푸라스(플러스)하게 되니 이것은 결국 검찰 파쇼를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우리나라는 경찰이 중앙집권제로 되어 있는데, 경찰에다가 수사권을 전적으로 맡기면 경찰 파쇼라는 것이 나오지 않나, 검찰 파쇼보다 경찰 파쇼의 경향이 더 시지(세지) 않을까?…오직 우리나라에 있어서 범죄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생각을 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도 조만간 수사권하고 기소권하고는 분리시키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예심판사 제도는 “프랑스 형사사법체계에서 유지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개혁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200년 전 프랑스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은 아직도 의미있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예심판사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회(10월15일)에 더 이어가겠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