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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디지털 시대의 인연

등록 :2022-09-29 18:45수정 :2022-09-30 02:35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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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연을 참 가볍게 여겨요. 인터넷이다 소셜미디어다 해서 서로 쉽게 연이 닿다 보니,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네요.”

얼마 전 조찬 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꺼낸 말이다. 디지털 매체를 잘 쓰는 젊은 층과 디지털 매체를 덜 사용하는 중장년층, 이렇게 집단을 둘로 나눠서, 전자가 후자보다 인연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견을 전했다.

조찬 모임을 끝내고 이동하는 길에, 최근에 내가 받았던 새로운 인연에 관한 연락을 회상해봤다. 휴대전화, 연구실 전화,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이메일 등 다양한 경로로 낯선 이들이 연락해 온다. 돌아보니 내게 다가온 낯선 이들의 연락이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뉘었다.

첫째, 이름을 알 만한 기업체 대표의 경우, 비서실에 있는 분이 연락해 오는 경우가 흔하다. 어찌 알았는지, 주로 내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해 온다. 대표가 나와 만나서 식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서가 전달해준다. 유행하는 성격검사인 ‘엠비티아이’(MBTI)에서 늘 내향적 성격으로 판별되는 내게, 낯선 이, 무거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영자와 갑자기 대면하는 상황은 적잖이 불편하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만남을 청하는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고 한다. 만남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둘째, 많지는 않았으나,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연락해 온 경우가 좀 있었다. 메신저를 통해 연락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자기 아이와 한 시간 정도 만나달라는 요청이다. 좋은 곳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소정의 비용을 지불할 테니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아이의 진로에 관한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 때로는 아이의 생활기록부에 남길 만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런 만남을 청했다.

셋째,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이 직접 만남을 청하는 경우이다. 주로 이메일로 연락해 온다. 대개 학교에 제출할 과제를 위해 만났으면 하는 상황이다. 나와 만나면 본인이 물어보려는 내용을 기자의 인터뷰 질문지처럼 번호를 달아서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질문 내용을 보면, 최소한의 조사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질문에 담긴 내용 자체가 오류이거나, 친구와의 채팅창에 남긴 글처럼 오타와 비문이 난무한다. 월요일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과제를 수요일까지 내야 하니, 화요일에 만나달라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앞서 열거한 세가지 유형의 요청에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상대의 요청이 내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최근 내게 연락해 온 한 중학생을 다음달에 만나기로 했다. 오랜 고민과 정성이 담긴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온 학생이다. 왜 만남을 청하는지, 만나기 전에 개인적으로 어떤 준비와 고민을 했는지, 만남을 통해 본인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상세히 보내왔다. 본인의 몇달치 용돈을 모아서 30만원을 준비했는데, 일종의 자문비로 지급하고 싶다는 뜻도 조심스레 전해 왔다. 이 학생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자문비를 받을 생각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학교 앞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고 한다. 그 학생은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얻어간다고 여기며 고마워하겠으나, 반대로 나는 그 학생을 통해 요즘 10대 청소년의 고민, 꿈, 생각을 배우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멋진 미래가 기대되는 청소년과 새로운 인연이 닿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다.

나와 상대의 마음이 닿을 때 우리의 인연은 연결된다. 마음이 닿게 이끌어주는 힘은 디지털 매체에 관한 친화성이나 나이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권력, 위치, 돈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마음이 닿게 하는 힘을 가진 그 학생, 내향적인 내 마음에 깊게 들어온 그 학생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그와 어떤 음식을 함께 나눌지 즐거운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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