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책문화 살리기 출판문화인 궐기대회’에서 출판문화인들이 거꾸로 가는 정부의 출판정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2023년 8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책문화 살리기 출판문화인 궐기대회’에서 출판문화인들이 거꾸로 가는 정부의 출판정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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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 소설가·중앙대 교수

 케이(K)-문화의 힘이 드높다. 정부는 문화·콘텐츠 분야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아 시장 규모 300조원, 문화 수출 5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올해 7천억원 정책펀드 조성 계획도 내놓았다. 원천 지식재산(IP) 확보와 지식재산 시장 활성화 방침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원천 지식재산을 생산하는 창작자들은 지난 어떤 시기보다 더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 거장 황석영의 건재를 보여준 신작 ‘할매’는 큰 호평을 받았지만, 판매량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으로 한국 문학이 국제적 주목을 받았지만, 나비효과는 크게 없었다. 신진 작가의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는 더 찾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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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아름답고 쾌적한 공공 도서관이 늘어나고, 대출서비스의 혁신으로 독서 환경이 나아진 것은 다행이다. 많은 도서관이 상호대차 제도를 도입해 자기 도서관에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게 했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아예 택배로 책을 집에 보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도서관의 발전이 작가와 출판사를 더 어렵게 만든다. 책을 사보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가는 핵심 조건은 원천 지식재산의 확보다. 지식재산의 원천은 기초예술이다. 기초예술 생태계를 유지 발전시키려는 대책이 빠진 인공지능 강국 정책은 사상누각이다. 문화예술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가 서사와 언어다. 그러한 서사를 갱신해나가는 언어의 연금술사들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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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폭우가 내린 다음 날에도 경기 성남시민들이 탄천에서 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경기도의 계곡을 도민들에게 돌려주었다. 법과 제도를 핑계 댄 적이 없다.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낼 방법을 찾았다. 작지만 빠른 실행으로 효능감을 극대화하여, 희망과 신뢰를 안겨주었다.

그런 효능감을 지식재산 생산자인 기초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상징적인 사업이 절실하다. 나는 ‘공공 대출권’(PLR/Public Lending Rights) 제도의 도입을 최우선으로 제안하고 싶다. 공공도서관에서 대출하는 도서에 대해 작가와 출판사에 대가를 지급하는 이 제도는 1946년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했고, 현재 35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에서 26개국이 도입하고, 우리보다 경제·문화적으로 어려운 나라도 도입한 제도를 외면하면서 과연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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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세가지다. ①공공도서관 예산이 부족한데, 도서구입비까지 줄어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②주식투자법 같은 책까지 보상해달라고 할 텐데 지급 대상을 구별하기 어렵다. ③어차피 책이 잘 팔리는 유명 작가들이 많이 받아가게 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된다.

이런 우려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밝혔듯이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은 국가의 필수 투자 영역이다. 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별도로 추가 편성하면 된다. 이미 어느 공공도서관에서 어떤 책이 몇회 대출되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지급 대상은 창작 지식재산의 성격이 가장 명확하고, 예술 생태계의 토대가 되는 문학 도서부터 시작하여 그 성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 여부를 결정해나간다면, 반대할 국민이 있겠는가. 유명 작가에게만 유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영국에서처럼 한 작가당 지급액을 최대 1천만원 수준에서 제한하거나, 대출 회수에 따라 단계별로 차등 지급하면 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법제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핑계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공 대출에 따른 보상을 저작자의 ‘권리’로 하면 법 제정 절차가 필요하고 논의가 길어진다. 그러나 먼저 문학 도서를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으로 ‘모국어 창작 지식재산 지원사업’을 시작한다면, 정책 결정만으로 바로 시행 가능하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다양한 지원금과 같은 차원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국민의 문해력 제고를 위한 특별 지원사업으로 편성하면 즉각적인 실행에 아무런 장애도 없다. 현재 갖춰진 뛰어난 도서관 전산시스템을 통해서 독자들이 빌려 본 만큼 깔끔하게 지식재산 생산자를 지원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국정회의에서 늘 강조하듯이 법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해나가면서 필요한 법제화 절차를 밟으면 된다.

공공 대출권 제도가 한국어 기반의 원천 지식재산 생산 지원정책이자 창작가들의 생존과 자부심을 지켜주는 복지 정책으로, 이재명 정부의 중요한 문화예술 분야 업적으로 남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