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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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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지 | 요양병원 상담실장

 요양병원에 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을 정말 어디까지 방치할 수 있을까. 입원 상담을 하다 보면, 그 질문 앞에 오래 멈춰 서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손발톱은 깎은 지 오래고,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 옷자락마다 떨어진다. 귀에는 귀지가 가득해 체온계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요양병원에 도착하는 어르신들을 마주하면, 한 생이 얼마나 외면당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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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의 태도도 종종 그와 다르지 않다. 약정서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서명을 휘갈기고는 “그냥 아무 조치도 하지 말고 돌아가시게 놔두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병원 직원들 모두가 침묵한다. 어느 날은 이런 요청까지 있었다. “어차피 밥도 못 드시는데, 식사 그냥 안 주면 안 돼요?”

그 말을 들은 병원의 공기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보호자 본인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듯했다. 나는 얼른 환자의 안색을 살폈다. 어쩌면 그 말은 환자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입원 전부터 이미 보호자의 마음은 닫혀 있었을 테고, 환자도 그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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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냉담함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떤 보호자는 상담 도중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냥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리고, 우리도 때렸어요. 그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 이 병원비도 너무 아깝게 느껴져요.” 그 말에는 울음이 섞여 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그 마음,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원은 그런 사연으로 환자를 차별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우리 엄마는 특별 대우해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아버지에겐 밥도 주지 말라”는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누구의 부모든, 어떤 사연을 지녔든, 모든 환자를 똑같이 씻기고, 손톱을 깎고, 식사를 챙겨야 한다.

누군가는 마음을 닫은 채 떠맡기고 갔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마지막만큼은 사람으로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바란다. 그것이 요양병원이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