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격화, 뒤이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드러난 서태평양 질서 재편 움직임, 아베 신조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움직임과 야스쿠니신사 전격 방문 등 노골적인 과거 회귀 행보,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표방 등 한반도 주변 동북아 정세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이자 미국 대아시아 정책에도 정통한 김영호 교수(하버드대 초빙교수)가 각국의 대외정책과 실제 움직임을 긴급 점검하고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을 제시하는 특별기고를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지난 26일 마침 일본 도쿄 거리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뉴스특보를 접하고 오히려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역사관이나 정치철학으로 보아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본심이고 보수 본색이니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그에 대한 기대나 오판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는 일본 시민사회 지도자들도 그의 본색을 접하고 어떻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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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상당한 아시아 전문가들이 “아베 총리가 2006년 정치적으로 취약한 총리였을 때도 국내 극우파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훨씬 강력한 총리로서 국내외 큰 과제들이 많은데 그런 고루한 유혹에 빠질 리가 없고 또 취임 뒤 근 1년간 참배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고 평가하고 예상했다. 한국은 옛날 생각만 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있지 않느냐는 식이었다. 이제 그들도 뒤통수를 한대 맞고 생각 좀 바뀔까?

아베의 키워드는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이다. 아베의 백댄스(Back Dance)는 아베노믹스(Abenomics)보다 아베노틱스(Abenotics)에 잘 드러나고, 아베노틱스 중에서도 정치군사적 정상국가론보다 ‘과거사에 대한 정상역사인식’ 여부에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백댄스는 야스쿠니신사에 백(Back)한 데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자존 자위의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1995년 당시 총리 담화문)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한 것을 참지 못하고 “침략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추종세력들은 “일본은 침략국이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적 에피고넨(추종자)들을 내세워 무라야마 담화를 대체할 아베 담화를 내겠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존 자위의 전쟁’에서 전사한 이를 전범 특히 A급이라고 하는 것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핵폭탄 무기 때문에 억울하게 패전한 뒤 승자 마음대로의 도쿄재판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억울하다고 분개까지 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으로 일본은 원통하게 희생되었다는 피해자 의식이 도도하게 흘러 전범국가의 반성 기류는 흰 구름처럼 표류한다. 이런 입장에서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것이니 과거 총리 할 때 야스쿠니에 공식 참배 못한 것은 ‘통한의 극’이라고 자탄했던 것이다. 야스쿠니 공식 방문은 헌법상의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지만, 미국의 영향으로 만든 전후헌법은 전후체제의 극복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무시하는 것이 또다른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고도로 정치적인 행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민속적 의례에 불과하다고 호도한다. 그는 취임 이후 참으로 주도면밀하게 ‘야스쿠니 정치’를 해왔다. 매번 거의 모든 각료를 참배시키며 자신도 대리인을 보내 공물만 바치는 연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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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참배는 성격상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위반이다. 전후 연합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적 성격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자는 일본 보수 본류의 야스쿠니 와신상담을 두고 2차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한·중 못지않게 미국이 신경써야 할 문제인데 미국은 미-일 문제라기보다 한·중·일의 문제로 돌려버린다. 일본은 대외적으로 알링턴 묘지에 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도를 계속하자 지난 10월 2+2 회의에 참석했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무명용사의 묘인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역’에 참배하여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일본은 대내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한국·중국 등의 내정간섭을 물리치고 외교적 자주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선전한다.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이 통한다는 사실이다.

야스쿠니 참배로 보수지지 다져 한·중 적대시→국가주의 몰이로 시민사회 반발 잠재우려는 판단비밀보호법 등 일 시민사회 반발 평화헌법 계승 강조하는 일왕 등 ‘아베노틱스’ 여러 난제에 봉착박대통령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미·중·일 호응 못얻어 고립 초래 각국 시민사회 동조할 가치 담길

결국 도쿄의 야스쿠니 컨센서스를 대표하는 아베가 표방하는 ‘전후체제의 극복’은 전전체제에 대한 긍정적 해석 세계에의 복귀와 계승으로 이어진다. 그 야심은, 미국이 만든 전후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귀착되고 헌법 개정에 선행하여 중국과 북한의 안보위협을 들어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개정을 추진하고 여기에 미국 군·산·정·학 복합체의 후원을 받아 미국 정부의 지지를 얻는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센카쿠열도 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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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분쟁의 상호의존’ 구조를 주목한다. 섬의 영유권에 대한 역사지리적 측면보다 그것을 시진핑 정부와 아베 정부가 각각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 극대한으로 활용하는 정치공학이 문제라는 뜻이다. 아베는 이를 이용하여 영토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고 국민의 우경화를 획책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군사대국화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대두에 대응하여 ‘아시아에의 귀환’(Pivot to Asia)을 표방하고 있으나 엄청난 재정적자에 묶여 결국 재팬머니를 이용한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대중국 억제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아베 정부 전략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결국 경제대국 일본이 전후체제의 극복으로 전전역사에 대한 긍정적 해석 세계에 복귀하여 군사대국으로 전화한다는 야망이다. 이것은 마치 경제대국 독일이 나치즘으로 회귀하면서 군사대국화를 추진한다는 가상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사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헌법 개정은) 독일 나치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느냐”는 언급이나, “조선인을 가스실로 보내라”는 혐한 시위대의 나치식 구호 등 나치 동맹국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본에서 특정비밀보호법이 강행통과되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시민사회의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 아베 내각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졌다. 평화헌법 계승을 강조하는 일왕의 뜻도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아베로서는 부담이 된다. 더구나 아베 앞에는 지금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당장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있다. 오키나와 주민과 시민사회의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소비세 7% 인상 문제 또한 엄청난 재정적자 때문에 더 미룰 수 없고, 단행하자니 아베노믹스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또한 갈수록 난항이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개정과 헌법 개정은 더욱 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여기에서 아베 총리로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보수적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면서 한국 및 중국 등과의 관계 악화에 의한 보수적 적대관계를 확대하는 것이 국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시민사회의 반발을 잠재우고 앞으로의 난제들을 밀고 나가는 데 유리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국내외 여론이 악화하면 추진 동력은 떨어진다.

야스쿠니 정치를 하는 아베 정부로서는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에서 과거사를 재정리하려 하고 있고, 한국으로서는 그보다 더 나아가는 과거사 정리가 현실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간격이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10년 한-일 지식인(1000인) 공동성명에서 ‘을사보호조약’ ‘한국병합조약’ 등의 불법·무효를 선언하였고 비슷한 논리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례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나와 이미 정부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각료가 안중근 의사를 ‘범법자’라고 한 것은 한말 여러 조약의 합법성을 전제로 모든 독립운동가를 두고 한 말이고, 한국으로서는 국가의 정통성 문제이니 후퇴할 수 없다. 일본은 세계사에 식민지 책임 대신 식민지 반동을 보인 유일한 국가가 되려는가?

우리는 일본의 과거사 미청산이 동북아 혼란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독도 문제나 센카쿠열도 문제 또한 일본의 역사청산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 시민·지식인 성명에 공감한다. 그리고 지금 동북아의 위기를 전쟁 직전까지 끌어올리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아베의 백댄스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이제 아베의 야스쿠니 정략을 넘어선 동북아의 재건축 설계가 절실하다는 데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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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미·중·일의 국제전략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대일본 정책이 민족주의적 반일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고립과 불신을 사고 말았다. 이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한국 정부를 살리는 ‘구명 밧줄’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그렇게 살아나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지금 시급한 과제다.

아베 정책 비판을 민족주의적 반일 차원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대립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아시아 질서의 건설, ‘시빌 아시아’의 건설, 혹은 현 대립을 넘어선 미래 가치를 담은 ‘건축학 개론’을 보여줘야 일본과 아시아 시민세력 및 개혁세력의 동조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리밸런스(재균형) 정책이 아베 백댄스와 잘못 엉키면 아시아 리언밸런스(재불균형) 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도 대안을 갖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호 하버드대 초빙교수·한국 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