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신호등 연정’이 붕괴하며 23일(현지시각)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는 예상대로 중도 보수 성향의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이하 기민-기사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연방의회 2당이 됐고, 몰락의 길을 걷던 좌파당이 기사회생하는 반전을 이뤘다. 다만 1당은 역대 두번째로 낮은 득표율로 선거에 승리했으며, 독일 정치의 좌우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과 데페아 통신 등 외신은 이번 선거를 분석하면서 독일인들이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 대표의 지도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기민-기사련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28.5%는 독일을 위한 대안(20.8%)를 누르기엔 충분했으나 2차 세계대전 이래 두번째로 낮은 표를 얻었다는 것이다.
23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디맵이 발표한 조사를 보면 메르츠가 ‘총리감’이라고 답한 사람은 43%에 그쳤다. 응답자의 35%만 메르츠의 정치 활동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59%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는 2021년 12월 임기를 시작할 당시 숄츠 총리의 지지율이 66%에 달했던 것과도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메르츠의 날 선 말투와 분열을 조장하는 스타일, 지난달 의회에서 논란이 된 메르츠와 독일을 위한 대안의 협력 의혹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는 확연한 구 동서독 지역의 ‘분열’이었다. 가디언은 “독일 통일 35년 뒤에도 동서 간 분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과거 공산주의 동독이 자리 잡았던 지역에서는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에 대한 지지가 뚜렷했다. 구 서독이었던 지역은 기민련과 기사련의 표밭이었으며 중간중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지지 지역이 흩뿌려져 있었다.
젊은 유권자들의 양극화도 눈에 띄었다. 와렌연구소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8~24살 유권자 가운데 좌파당이 26%를 얻어 선두를 달렸고 독일을 위한 대안(21%)이 바짝 뒤를 쫓았다. 다른 정당들은 10% 초반대 이하에 머물렀다. 외신들은 범죄와 이민, 괴롭힘과 급등하는 주택 비용 등이 젊은 독일인들을 중도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좌파당은 이민자들의 권리 보장, 주택 비용 제한 등 정책을, 독일을 위한 대안은 반이민 정책을 강하게 내세웠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2당에 올라섰음에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이 극우 정당에 부정적인 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인프라테스트-디맵 조사를 보면 독일인 70%이상이 연방정부 구성에 ‘독일을 위한 대안’의 참여에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와렌 연구소도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 응답자의 74%가 1당 기민-기사련과 독일을 위한 대안의 연립정부에 강하게 반대했다.
다만 독일인들은 10년 전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시리아 등 130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은 잘못됐다고 봤으며 응답자의 64%가 불법 이민에 강경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독일 정치에서 ‘사회 정의’ 아젠다를 주도해온 집권 사민당이 좌파당에 이를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와렌연구소의 조사에서 42%의 응답자는 좌파당이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실제로 만드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꼽았다. 인프라테스트-디맵 조사에서는 26%만 사회민주당이 가장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