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지 불과 사흘 만에 수지 와일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원회를 지휘하는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5성급 호텔의 로비에 앉아 있었다. 주말에 트럼프 권력의 실세들이 몰려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뉴욕타임스 기자가 멀리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트럼프 캠페인 공동책임자 크리스 라시비타를 비롯해 트럼프 선거운동에 관여한 고위 관리들이 기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곧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여론조사 책임자인 토니 패브리지오, 기금 모금 책임자인 메러디스 오로크도 보였다.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자리를 이동했다. 하룻밤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떠오른 와일스를 알아보는 사람은 취재 중인 기자 외엔 없었다. 트럼프 당선자의 차기 정부 장관 인선이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와중에 가장 중요한 비서실장이 라스베이거스에 나타나는 일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의 주말인 11월10일(현지시각)부터 나흘 동안 라스베이거스 포시즌스 호텔에서 록브리지 네트워크(Rockbridge Network)의 2024년 하반기 정기모임이 열렸다. 10일 늦은 오후가 되자 호텔에는 검은색 캐러밴이 드나들며 손님들을 내려놓았다. 공화당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는 재벌 가문의 후손인 리베카 머서, 페이팔을 창립한 벤처투자의 전설 피터 실, 플로리다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억만장자 제임스 블레어, 방위사업체 앤듀릴 공동창립자 파머 러키와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을 포함한 기술 억만장자들이 몰려왔다.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보였다. 록브리지 네트워크는 해마다 봄가을에 한번씩 회의를 여는데 트럼프의 재집권과 관련된 올해 가을 모임은 선거 직후의 첫 일요일로 정했던 것이다.
트럼프 당선의 막후 최고 공신은 바로 록브리지 네트워크다. 이번 트럼프 선거는 본선거(7월 전당대회 이후의 선거)보다 경선이 어려웠다. 선거 시작부터 공화당의 거액 기부자들 중 3분의 2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본격적인 공화당 경선이 시작되면서 공화당의 돈줄은 트럼프 대신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지원했다. 유명한 공화당 돈줄의 주류인 코크 네트워크는 처음에는 디샌티스를 지원했고, 그가 포기하자 헤일리를 후원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기업들은 트럼프의 정치가 결코 기업에 유리하지 않다고 결론을 냈다. 트럼프를 실패한 공화당 대통령으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헤일리가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끝까지 경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코크 네트워크의 돈줄 덕분이었다.
트럼프는 경선에서 독주를 하면서도 돈이 없어서 거의 포기 순간까지 갔다. 4건의 중범죄 형사 기소 건으로 수억달러의 보석금과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느라 바닥까지 탈탈 털렸다. 지난 3월과 4월의 상황이다. 온 가족이 돈을 빌리러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쏘다녔다. 이때 거액의 돈뭉치를 들고 트럼프의 선거운동에 뛰어든 것이 바로 록브리지 네트워크다.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부통령이 된 제이디(J.D) 밴스와 함께 엮어낸 성과다.
록브리지 네트워크는 2019년 제이디 밴스와 우파 정치컨설턴트인 크리스 버스커크가 공동창립한 벤처투자가들의 우익 정치 후원 펀드다. 록브리지 네트워크 덕분에 트럼프는 고비를 넘겼다. 록브리지 네트워크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우익 자본가들을 확대 조직해서 트럼프의 선거 자금을 끝까지 감당했다. 이 벤처투자가들은 보수 정치 복원을 위해 이미 자신들의 동료 한명을 2022년에 전략적으로 상원의원으로 만들어냈다. 그가 바로 이번에 부통령이 된 밴스다.
2019년, ‘힐빌리의 노래’의 작가로 잘 알려진 밴스와 크리스 버스커크라는 보수 언론인은 밴스의 정치 경력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작은 만찬을 잇달아 주최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트럼프가 첫 집권에서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마가)가 미국이 가야 할 길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결국 코크 네트워크에 대항해, 트럼프 중심의 (돈줄)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나섰다. 오하이오주 록브리지의 한 리조트에서 밴스가 기부자, 우파 활동가들과 함께 처음 회의를 조직했고 록브리지 네트워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힐빌리의 노래’가 인연이 되어 이미 관계가 있었던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이에 결합하면서, 주로 민주당을 선호해온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들 중에서 보수우익 자본을 분리해서 끌어냈다. 이들은 스스로를 실리콘밸리가 아니고 선밸리라고도 한다.
밴스와 함께 록브리지 네트워크를 처음 창립한 크리스 버스커크는 더 타임스의 전직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그는 정치권에서 직접 일한 경험은 없으나 뉴라이트(New Right) 계열의 사회운동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궤도에서 늘어나는 보수적인 비즈니스 세계의 인맥을 이용하여 기부자들을 조직하고 록브리지를 확대 건설했다.

2019년부터 록브리지는 정치 패널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연사로는 터커 칼슨 같은 사람들을 불러왔고, 티엘의 제자 블레이크 마스터스, 카지노 거물 스티브 윈, 투자자 데이비드 색스 등을 모았다. 이들은 공개된 문건에서 “지속적인 정치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화당의 쇠퇴의 원인이 된 싱크탱크, 미디어, 조직 및 활동가 그룹으로 구성된 현재 공화당 생태계를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까지 이들 거액 기부자들은 야망은 뚜렷하지만 기부한 돈만큼 성과를 달성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 왔지만 이번 트럼프의 당선으로 록브리지 네트워크가 정권을 좌우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나서게 되었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으로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선거에서도 선거인단에서도 승리했다. 하원에선 간발의 차 승리지만, 상원은 53석을 확보했고, 27개주가 공화당 주지사다(민주당은 23개주). 마가 운동이 절반 이상을 석권한 큰 승리다. “마가 운동의 시작은 트럼프지만 목표점은 밴스”라는 게 트럼프 승리 이후 이들의 입장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전통적인 공화당주의자들과 불화를 겪었다. 자유주의 코크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좀 더 매파로 구분되는 미국 기회동맹(American Opportunity Alliance : Paul Singer, Ken Griffin, Warren Stephens)과도 종종 불편한 관계로 충분한 지원과 후원을 받지 못했다. 그런 트럼프를 지원해 재선에 성공하게 한 록브리지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대단히 커졌다.
트럼프 2기의 권력 축은 직접 캠페인을 담당한 수지 와일스와 크리스 라시비타를 중심으로 하는 캠페인 캠프, 선거 자금을 담당하며 밴스를 내세운 록브리지 네트워크에 있다. 록브리지에서 가장 큰돈을 내놓은 일론 머스크, 피터 실, 리베카 머서 등의 영향력은 트럼프 2기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머스크는 펜실베이니아를 책임지고 자신이 직접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머스크는 총 3억8천만달러(약 5332억원)에 이르는 돈을 풀었다.
트럼프는 내각을 구성하면서 과감하게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첫 당선 때인 2016년 11월, 12월엔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연예인 오디션을 하듯 공개적으로 인터뷰하고 발표도 하면서 요란을 피웠는데 이번엔 그때의 트럼프가 아니다. 조용히 비공개로 번개같이 장관을 임명한다. 막무가내 과감한 인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첫 당선 때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그는 여전히 “워싱턴 오물 청소하기”라고 설명한다. 트럼프의 장관 임명은 두 축에서 이루어진다. 캠페인 캠프와 록브리지 네트워크다. 전자는 사회·외교·안보 쪽이고 후자는 경제·재무·통상 쪽이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를 밀착 수행하면서 미국의 국가 육성 산업을 자신의 산업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우려가 크다.
11월10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루어진 록브리지 네트워크 모임. 비서실장 내정자인 수지 와일스가 30여명의 록브리지 고액 기부자들을 위해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야외 만찬을 열었다. 음악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참석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의견을 교환하고,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인지 찬반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술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서로 적대하지 않고 직접 협력하게 된 것이 록브리지의 역할이라는 데 공감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입 희망자가 폭증한다고 한다. 2만5천달러(약 3500만원)를 내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지만, 회원 가입 비용은 10만달러(약 1억4천만원)고 영구회원비는 100만달러(약 14억원)이다.
정치권으로 들어오는 돈의 성격에 따라서 미국 권력의 방향이 결정된다. 트럼프 2기와 그 이후의 미국을 알려면 록브리지에 주목해야 한다. 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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