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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엡스틴(왼쪽)과 공범 지슬레인 맥스웰. AFP 연합뉴스
제프리 엡스틴(왼쪽)과 공범 지슬레인 맥스웰.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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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들을 상습 성착취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사망한 미국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틴(1953~2019)과 밀접하게 교류한 유력 인사들 명단이 3일 공개됐다. 다수는 범죄와 무관하다고 알려졌으나, 충격적 행각을 벌인 그와 어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명성에 큰 금이 가게 됐다.

이번 명단 공개는 10대 때 엡스틴의 성노예로 살았다는 버지니아 주프레(40)가 엡스틴의 연인으로 범죄를 도운 지슬레인 맥스웰(62)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자료들이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의 이름은 재판 과정에서 비공개로 처리됐으나 지난달 뉴욕 법원이 공개를 결정했다. 몇 차례 이어질 공개 첫날인 이날은 943쪽에 걸쳐 실린 180여명의 이름이 공개됐다. 다수는 이미 엡스틴과의 관계가 알려졌으나 이번 자료로 보다 자세한 내용이 드러난 경우도 있다.

우선 전직 대통령들 중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등장한다. 피해 여성들 중 하나는 엡스틴이 “언젠가 클린턴이 어린 여자들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변인은 앞서 논란이 일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2·2003년에 클린턴재단 일을 위해 유럽·아프리카·아시아로 가면서 엡스틴의 자가용 비행기를 4차례 이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의 범죄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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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또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소유 카지노를 방문했을 때 엡스틴이 “트럼프를 부르자”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엡스틴의 친분도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엡스틴에 대해 “그도 나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그들 중 어린 여자들이 많다”고 말한 바도 있다.

엡스틴과 어울리면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논란에 시달려온 앤드루 영국 왕자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진술한 여성은 2001년 뉴욕 타운하우스에서 앤드루 왕자가 자기 가슴을 만졌다고 밝혔다. 17살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주프레한테 민사소송을 당한 앤드루 왕자는 이를 부인하면서도 2022년 거액의 합의금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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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가수 마이클 잭슨과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도 엡스틴의 플로리다주 맨션을 방문한 것으로 나온다. 앞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이 엡스틴과 교류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사 출신인 엡스틴은 헤지펀드 거물로 변신해 큰 부를 쌓았다. 2006년 미성년자 여럿을 성착취한 죄로 13개월간 복역했는데, 그 뒤로도 미성년자 수십 명을 모델로 만들어주겠다는 식으로 꾀어 동거하면서 성적 노리개로 삼은 것으로 드러나 2019년에 다시 체포됐다. 그는 여성들을 성접대에 동원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수감 중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국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공범 맥스웰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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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은 대부분 범죄 혐의는 없지만, 미성년자 성착취범으로 등록된 사람임을 알면서도 엡스틴과 어울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