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숨소리만으로 내 수면의 질을 파악한다.’
2020년 설립된 스타트업 에이슬립(대표 이동헌)이 제공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에이슬립 트랙’의 기술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준기 에이슬립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숨소리로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것은 에이슬립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라며 “수면의 질 파악은 수면테크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면은 신체와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패턴, 다양한 환경 요인 등으로 인해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CES서 수면테크 부상 확인
문제는 수면의 질을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원에서는 수면의 질이나 수면 장애를 ‘수면다원검사’라는 방법으로 진단한다. 수면다원검사는 수면 중의 뇌파, 안구운동, 근육 움직임, 호흡, 심전도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해 판단한다. 측정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판독가가 30초 단위로 수면 상태를 진단한다. 이를 통해 △깊은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렘수면(꿈수면) 단계인지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수면 장애가 있는지 등을 파악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들 정도로 비싸다는 점이다.

웨어러블 아닌 새로운 측정 방식 모색
‘에이슬립 트랙’은 ‘수면다원검사’의 주요 결과치들이 숨소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간의 호흡은 ‘들숨-날숨-휴지기’가 반복되는 과정이다. 깊은 잠에 빠지면 이 과정이 규칙적이 된다. 하지만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에서는 ‘들숨-날숨-휴지기’가 불규칙해진다. 렘수면 단계가 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자율신경계가 불균형해지기 때문이다. 불균형해진 자율신경계는 호흡도 불규칙하게 만든다. 홍 CTO는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여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숨소리로 수면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은 스마트워치 등으로 심장 박동의 규칙성을 측정하는 방법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숨소리는 심장 박동보다 많은 정보를 준다. 숨소리는 수면의 깊이에 따라 ‘울림 정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홍 CTO는 “잠이 깊을수록 기도 근육이 이완되면서 숨소리에서 울림 정도가 커진다”며 “이렇게 숨소리는 규칙성과 울림이라는 두 측정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면의 질에 대한 평가 정확도가 높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숨소리 녹음하면 ‘분석 끝’
측정방법도 간단하다. 잠잘 때 스마트폰을 베개 옆에 두기만 하면 된다. 별도의 기기나 복잡한 설치 과정 없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마이크가 사용자의 숨소리를 감지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에이슬립 트랙은 사용자의 수면 패턴과 질을 분석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홍 CTO는 에이슬립 설립 계기로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 참석을 꼽는다.
“‘2020년대 새로운 10년의 기술트렌드’를 조망하는 당시 CES 현장에서 ‘수면테크’가 새롭게 부상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세를 이뤘던 것은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카이스트 대학원 전기및전자공학부에서 만나 뜻을 모은 홍 CTO와 이동헌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웨어러블이 아닌 다른 방식의 수면테크 기술을 꿈꾸게 됐다.
“수면의 질은 밤새 측정해야 하는데 보통 스마트워치도 주로 밤에 충전합니다. 또 시계를 차고 잠을 자야 하는 데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도 매우 많았습니다.”
온수매트 등 결합 ‘쾌적 수면 온도’ 제시
이에 따라 에이슬립은 웨어러블이 아닌 방식으로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방법을 찾았다. 레이더 등 여러 방법을 고려하다가 결국 숨소리 측정 방식을 택했다. 숨소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2020년 6월 출범한 에이슬립은 3년이 지난 뒤인 2023년 9월에야 에이슬립 트랙을 출시했다.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수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간이 그만큼 길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수면다원검사’를 할 때 숨소리를 함께 녹음했다. 녹음된 숨소리를 분석해 수면의 질을 파악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수면다원검사 결과와 비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데이터가 7천여 개 모였을 때, 숨소리로 수면의 질을 분석하는 세계 최초 프로그램인 ‘에이슬립 트랙’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에이슬립은 새로운 수면의 질 측정 기술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9월 경동나비엔에서 출시된 ‘숙면매트 온수’도 그중 하나다. 이 숙면매트는 취침자의 수면상태를 반영해 매트의 온도를 자동 조절한다. 가령 취침자가 렘수면 상태가 되면 그 상태를 에이슬립 트랙이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매트에 전달한다. 매트는 이에 맞춰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면서 숙면이 되도록 유도한다.
홍 CTO는 “이 밖에도 에이슬립 트랙은 에어컨의 온도를 조절한다든가, 아침에 일어날 때 실내조명의 빛을 조절하는 등 다양하게 수면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며 “에어컨, 침대, 조명 등 다양한 가전기업과 협업을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에이슬립은 이렇게 에이슬립 트랙의 활용범위를 넓히는 한편, 기술력 향상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쏟아왔다. 무엇보다도 기술력 향상의 근간이 되는 수면 데이터 확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24년 10월 현재 수면 데이터 수가 1만 건을 넘어섰다. 새롭게 늘어난 수면 데이터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수집된 것도 포함된다.
홍 CTO는 “수면테크 세계 시장은 2030년 100조원으로 예측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며 “앞으로 ‘숨소리로 수면의 질을 측정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따라 하는 기업이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그는 “수면 데이터 수집 등을 통해 기술력 향상에 힘쓴다면 에이슬립은 기술 선도자의 위치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이슬립이 ‘트랙’과 별도로 수면 무호흡 진단 보조앱인 ‘앱노트랙’(Apnotrack)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기술 선도자 유지를 위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앱노트랙’은 ‘에이슬립 트랙’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녹음기능을 이용한다. 하지만 ‘앱노트랙’은 무호흡이었다가 다시 호흡을 시작할 때 발생하는 특별한 소리 등을 이용해 수면무호흡증 진단에 도움을 주는 의료 장비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종 인허가를 받았다. 홍 CTO는 “앱노트랙은 현재 FDA 승인 절차 중에 있으며, 2025년 하반기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 CTO는 또 “에이슬립은 현재 비투비(B2B)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사업모델이 중심이 돼 있지만, 앞으로는 개별 소비자의 수면 코칭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비투시(B2C)로도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면에 관한 모든 것’(All About Sleep)이라는 회사 이름(Asleep)에 걸맞은 활발한 움직임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에이슬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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