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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 시내에 붙은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 시내에 붙은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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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체가 길어진 개인의 소액 채무를 일괄 사들이는 ‘배드뱅크’ 방식의 채무조정에 나선다. 2차 추가경정예산과 금융권 협조 등으로 8천억원을 확보해 16조4천억원의 채무 매입을 이르면 연내 시작한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에도 7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채무조정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1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부의 2025년도 2차 추경안에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 4천억원, 새출발기금 제도개선을 위한 예산 7천억원이 포함됐다.

연내 부실채권 매입 시작…113만여명 수혜 예상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배드뱅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구현한다. 채무조정기구가 금융회사와 협약을 맺고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모두 사들인다. 예산과 금융권 협조 등으로 4천억원씩 모두 8천억원을 확보한다고 가정하면 16조4천억원의 연체채권을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추정 수혜 인원은 113만4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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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조정기구는 올해 안에 연체채권 매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입한 채권은 추심이 즉시 중단되고, 국세청 자료 등을 바탕으로 채무자의 소득·재산을 심사한다. 소득이 중위소득의 60% 이하이고 회생·파산 인정 재산 외 처분가능재산이 없는 등 개인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경우엔 사들인 채권을 전부 소각한다. 그 외에도 빚 규모에 견줘 상환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면 원금을 최대 80%까지 깎아주고 길게는 10년까지 분할상환할 수 있게 채무조정을 진행한다.

정부는 채무조정기구 재원 절반을 금융권 협조로 채울 방침이다. 금융권의 기부나 출연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과거 국민행복기금(2013년)이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2018년) 등이 금융권 재원을 활용한 바 있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4천억원 이상을 금융권에서 공동 부담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에 남아 있는 재원 등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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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 부실채권 매입이 시작될 전망이지만 채무자 부담을 덜기 위해선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야 해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과거 대규모 빚 탕감이 이뤄졌던 국민행복기금은 부실채권을 사들인 뒤에도 금융복지상담센터에 채무 상담을 신청해야 추심이 중단됐지만, 이번에는 매입 즉시 추심이 중단되도록 했다. 만약 매입 후 빠른 속도로 심사와 처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부실채권을 대규모로 사들인다는 상징성만 있을 뿐 실제 취약계층의 부담을 더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올 여지가 있다. 실제로 과거 국민행복기금은 매입 이후 과도한 추심으로 ‘국민불행기금’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새출발기금 지원대상 확대…6월 사업영위자까지

이번 2차 추경안에는 캠코 산하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확대를 위한 재원도 7천억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마련한 새출발기금 제도개선 방안을 보면, 모든 채무가 1억원 이하이면서 중위소득 60% 이하인 저소득 소상공인의 무담보 채무에 대해 채무원금 감면율을 기존 최대 80%에서 90%로 높이고, 분할상환 기간도 기존 최장 10년에서 20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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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에 따른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후로 꾸준히 대상을 확대해왔다. 현재 지원 대상은 2020년 4월∼2024년 11월 사업영위자인데 추경을 통해 올해 6월 사업영위자까지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대상을 확대하면서 10만1천명이 신규 또는 추가로 혜택을 볼 것으로 금융위는 전망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해온 ‘도덕적 해이’ 논란에 선을 그었다. 금융위는 “성실상환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데 공감하지만 누구나 장기 연체자가 될 수 있다.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능력을 상실한 연체자만 엄격히 선별해 지원할 것이다. 새출발기금 지원 확대도 다양한 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를 운영 중”이라며, “채무불이행에 따른 추심·압류 등 고통을 고려하면 (빚 탕감을 노린) 고의 연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