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인인증서 700여개가 악성코드에 감염돼 외부로 유출된 것과 관련해, 유출 사실을 파악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음에도 금융결제원이 아직 경찰에 수사의뢰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자금융사기수법이 보이스피싱에서 파밍·스미싱으로 진화하며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데 관련기관이 금융사기범을 잡는 데 소극적으로 대처해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경찰청과 금융결제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융결제원은 전문 해커들이 공인인증서 700여개를 빼낸 사실을 발견하고 이달 초 유출된 공인인증서를 자체적으로 폐기했지만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지는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금융결제원에서 자료를 넘겨받아야 어떤 경로를 통해 피해자의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됐는지 수사할 수 있는데, 금융결제원이 수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수사의뢰는 피해를 입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유출된 공인인증서를 자체적으로 폐기하는 등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을 잘해 이번 사건으로 인한 금융 피해가 없었다”고 자찬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미래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수사의뢰를 해야 한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금융결제원의 인식이 안이했거나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관련기관이 서로 일을 미루는 탓에 금융범죄 재발 가능성만 키운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해 중간책들은 검거된 적이 많지만, 범죄를 기획하는 총책이 검거된 경우는 드물다. 일부에서는 “경찰은 총책이 해외에 있어 잡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조폭이 끼어 있는 국내 조직도 있다. 경찰이 자꾸 국외 조직만 얘기하며 수사를 회피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경찰은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금융실명제 강화 등 근본적인 방안을 요구한다. 전자금융사기조직은 보이스피싱이나 파밍사이트를 통해 계좌번호·비밀번호 등 금융거래정보를 알아내고, 이를 이용해 해당 계좌에서 미리 마련해둔 대포통장으로 돈을 이체한다. 따라서 금융실명제를 강화해 대포통장이 줄어들면 자연히 범죄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싱조직이 점조직화돼 있어 총책을 잡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대포통장만 잘 단속해도 피싱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며 금융당국으로 책임을 넘겼다.
박아름 기자 parkar@hani.co.kr
공인인증서 무더기 유출 20여일 지났는데…
범인 잡기는커녕 수사 시작도 안해
- 수정 2013-02-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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