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한국의 대표적 사회적경제 연대조직인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는 ‘한국사회연대경제’로 법인명을 바꿨다.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었다. 13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재설정하는 전환점이었다.
사회적경제 연대조직 출범 13주년을 맞아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초대 집행위원장), 안인숙 전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3대 집행위원장), 하재찬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전 상임이사), 강민수 한국사회연대경제 상임이사가 지난 11월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한국사회연대경제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향후 미래를 구상하는 자리였다. 좌담회 사회는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부원장이 맡았다.
―지난 4월 명칭을 한국사회연대경제로 바꿨다. 어떤 의미인가?
강민수: “1년 반의 논의 끝에 명칭을 변경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경제’는 오염된 용어라고 느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사회적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오해하거나 보조금만 받는 ‘좀비 기업’으로 불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5대 부문(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으로 구분해 지원하는 ‘하향식’ 방식에 굳어져 현장의 다양한 실천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었다. 명칭 변경은 우리 내부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올해 6월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사회연대경제를 공식 용어로 채택했지만, 우리의 변화는 정부나 국제기구의 결정과는 별개로 진행된 것이다.”
안인숙: “더 넓은 연대, 더 본질적인 활동을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회적경제가 경제에 좀 더 방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사회로 옮겨간 것이다. 경제가 사회를 끌어가던 시대에서, 이제는 사회가 경제의 방향을 이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변화인 셈이다.”
강민수: “명칭 변경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국가도 시장도 아닌 영역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 조직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질이다. 둘째, 5대 부문을 넘어 시민운동까지 포괄할 수 있다. 셋째, 더 지속가능하다.”
문보경: “명칭 변경에 대해 현장의 온도차가 있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쌓였는데 이를 바꿔서 생길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회원 조직 전체가 충분히 공감하고 논의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명칭 변경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
하재찬: “활동 전략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정책을 펼치는 부처 칸막이 속에서 우리도 만들어진 경로에 갇혀 있었다. 사회적경제가 본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임에도, 그동안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 같은 조직의 유형이나 부문 구분에 얽매여 왔다. 예를 들어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가 핵심이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라는 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 소통구조가 부문 중심으로 짜이다 보니 정책 개입과 실천에서도 한계가 있었다.”
강민수: “‘부문’이 아닌 ‘미션’ 중심의 활동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부문의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미션과 기후·돌봄·에너지 같은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일을 재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의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사회적기업이 시공을 맡으며, 신협이 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한국사회연대경제는 ‘지역순환’ ‘돌봄’ ‘에너지전환’ 등 사회적 의제와 미션 중심의 특별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하재찬: “한국사회연대경제라는 조직은 지역과 의제라는 씨줄과 날줄로 이뤄진 매트릭스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지역의 운동성을 강화하고, 지역의 운동을 전국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012년 유엔이 첫 번째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때, 한국사회연대경제의 전신인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가 출범했다. 당시 국내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본격 시행되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활성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됐다.
그후 몇 차례 전환점이 있었다. 2014년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최초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하며 ‘초당적 민생법안’으로 부각되었으나, 이후 ‘사회주의 경제법’이라는 이념 공세에 연이어 제정이 좌초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부 지원의 확대는 양날의 검이었다. 안인숙 전 회장은 당시를 “물이 들어오던 때”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16개 부처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55개 사업을 추진했다”며 “없던 배도 구해야 하고, 사람들이 나타나 좋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도 컸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대한 한국사회연대경제 내부 평가는 냉철했다.
강민수: “기회가 열렸는데 우리 실력이 정치권과 정부의 기대보다 부족했다. 실제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임팩트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문보경: “초기에는 한국사회연대경제에 전문가들이 다수 결합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정책 영역이 확장되면서 전문가들이 활동할 공간이 많아졌고, 집중됐던 자원이 분산됐다. 정부 주도의 정책과 사업은 활발해졌지만, 그 ‘속도전’을 따라갈 내부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
강민수: “윤석열 정부 들어 사회적경제 전체의 정책과 예산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 한국사회연대경제 내부적으로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연합체가 탈퇴하는 등 부침도 컸다. 하지만 이 시기에 현장의 흐름이 변했다. 이전에는 개인이 한국사회연대경제를 도왔다면, 지금은 조직이 돕고 있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와 같은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출범 초기부터 “위탁 용역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금도 정부 용역 없이 회원조직들의 회비와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하고 있다.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는 재정적 독립성이야말로, 행정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파트너’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협상력의 기반이라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13년 전, 32개 단체로 출범한 한국사회연대경제는 이제 30개의 지역·업종·유형별 연합체와 25개 단체가 함께하는 조직으로 확장됐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사회적경제기본법 추진, 전국 단위 사회적경제통합박람회 개최 등 여러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3년을 지나며 안팎으로 위기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미션 중심’이라는 깃발을 들고 새롭게 출발선에 선 한국사회연대경제는 오는 2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창립기념 후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근 사회적경제 주무부처가 행정안전부로 확정됐다. 그동안 사회적기업(고용노동부), 협동조합(기획재정부), 마을기업(행안부), 자활기업(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로 흩어져 있던 관련 정책들이 행안부를 중심으로 통합 조정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결정은 각 부처 간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지역·공동체 중심의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취지다.
―행안부가 사회연대경제 주무부처로 지정된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보경: “행정안전부에는 마을기업, 주민자치회, 마을공동체가 다 있다. 지역소멸대응기금 같은 정책 수단도 있다. 지역에서 시민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굉장히 좋은 환경이다.”
강민수: “다만 우려도 있다. 사회적경제 스스로 역량이 부족하면 부처의 정책과 제도에 휘둘리게 된다. 정책적 파트너가 되기 위한 내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하재찬: “세 가지다. 첫째, 상근자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의제와 미션 중심으로 소통 체계를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셋째,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 예컨대 좋은 조직을 함께 키우고, 정부 기금에 휘둘리지 않을 자체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협상력을 키우는 길이다.”
문보경: “한국사회연대경제가 전국을 다니며 정책의 우산 역할을 하려면 다른 조직들이 함께 재정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또한, 현장도 손 놓고 쳐다만 볼 것이 아니라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강민수: “사회연대경제가 우리 사회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에너지전환, 지역소멸 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의 결과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자본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지난 13년 동안 한국사회연대경제가 추구해 온, 그리고 앞으로도 추구할 과제이다.”
안인숙: “끊임없이 현장에 물어야 한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단지 ‘나’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퍼올려 어떻게 실체를 만들 것인지 예전에도 고민했고 앞으로도 고민할 것이다.”

한국사회연대경제 주요 연혁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제정연대회의’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통합,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출범
△2013년 ‘사회적경제 활동가대회’ 시작
△2017년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로 명칭 변경
△2020년 사단법인 전환, ‘코로나19 대응본부’ 설치·위기극복 캠페인 진행(현장 피해 조사, 정책 제안, 기금 마련 등)
△2024년 부설 연구소 설립
△2025년 ‘한국사회연대경제’로 명칭 변경, 지역순환·돌봄·에너지전환 특별위원회 운영
글·사진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jinnytree@hani.co.kr, 녹취정리 이하림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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