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디세이’가 흥행을 이어가면서 영화는 물론 원작과 그리스 신화에 관한 관심도 한껏 고조되어 있다. 2004년 영화 ‘트로이’가 개봉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와 원작의 차이점을 정리한 글이나 영상은 많이 있으니, 이번 칼럼에서는 오디세이와 관련한 중요 배경지식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것들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먼저 호칭부터 정리해보자. 오디세이는 사람 이름이다? 그렇지 않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 영웅 이름은 오디세우스(Odysseus)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제목이 오디세이아(Odysseia), 풀이하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제목인 오디세이(Odyssey)는 원래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를 뜻하는 영어 단어였다가 의미가 확장되어 지금은 ‘긴 여행’이나 추상적인 의미로 ‘여정’을 뜻하는 단어로도 많이 쓰인다.
언어나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은 ‘그럼 율리시스(Ulysses)는?’이라는 질문을 떠올릴 법도 하다.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인데, 아일랜드의 천재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걸작 소설 제목으로 삼으면서 더 유명해졌다. 괜히 그런 이름을 붙인 건 아니고 소설의 전체 구조와 수많은 상징을 오디세이아에서 갖고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이 소설은 못 읽어봤는데, 영국이나 미국 학생들에게도 극악의 난도로 정평이 나 있다. 참고로 1954년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율리시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각색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아일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의 인기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가 같은 제목으로 만든 노래가 있다.
https://youtu.be/w5CTu5RylCM?si=Kp8uh2jl6XA4cefD (프란츠 퍼디난드의 ‘율리시스’)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어느 쪽에 나오나? 목마가 성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와 달리 원작 오디세이아에는 목마 관련한 내용은 회상으로만 언급된다. 일리아스에는 아예 목마가 안 나온다. 많은 사람이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10년에 걸친 긴 전쟁 중에서 후반부 50여일 정도가 전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로 시작해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나버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호메로스가 죽은 지 수백년 지나고 베르길리우스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온다.
추억의 팝송 중 1970년대 네덜란드의 걸그룹 ‘러브’(LUV)가 발표한 노래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라는 노래를 들어보자. 당시 독일의 디스코 그룹 징기스칸을 필두로 뜬금없이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제목으로 삼는 유행이 있었는데, 이 노래도 그렇다. 뮤직비디오 후반부에는 백파이프 군악대와 스머프 인형 탈을 쓴 사람이 트로이 목마 노래에 맞춰 춤추고 행진하는 황당한 장면이 나온다.
https://youtu.be/TdVRKPLnxS4?si=qx8mhW6sKd-yx7vC (러브의 ‘트로이의 목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대체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며 정답은 없다. 호메로스라는 작가마저 가상의 인물이라는 과격한 의견도 있다. 대체적으로는 그리스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그러니까 기원전 8세기쯤 트로이 전쟁이나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음유시인이 호메로스였다는 설이 통용된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의 작가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오디세이아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다. 나 역시 여러 면에서 두 작품이 너무 이질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트로이 왕국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도 파다했으나, 19세기 후반에 트로이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되면서 상당히 큰 대도시였음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일리아스에 묘사된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 아이네이아스 등등 전사들이나 헬레네나 페넬로페 같은 왕비들도 실존 기록은 없다. 정리하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지역의 청동기 시대 역사를 수백년 동안 조금씩 각색해 만든 시와 신화의 결합체라고 봐야겠다.
이번 놀런 감독의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오디세이가 제목으로 들어가는 가장 유명한 영화였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신을 오랜만에 다시 보자. 1분이 조금 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현악곡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진행되는 이 영상은 많은 평론가에게 영화 역사상 최고의 도입부로 꼽히며 나도 같은 의견이다.
https://youtu.be/e-QFj59PON4?si=9CxHZMDkU9ZtO7a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오프닝)

이 영화 같은 역대급 명작 반열까지는 못 오르겠지만,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다. 미리 알고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고 그냥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명백히 전자.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이번 칼럼을 비롯한 배경지식을 조금 훑어보고 관람하시기를.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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