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3월부터 9월 말까지 <한겨레>에 연재했던 공지영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가 책으로 나왔다. 경북 칠곡군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사제의 길과 세속의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수사를 중심에 놓고 사랑과 죽음, 정의와 섭리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소설 구상과 취재 그리고 연재 과정에서 작가에게 많은 도움을 준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수도원장)와 작가 공지영이 28일 오후 왜관 수도원에서 만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 관해 대담을 나누었다.
박현동(이하 박)<높고 푸른 사다리> 출간을 축하 드린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얘기를 들었고 수도원 생활 등과 관련해 취재 대상이 되었던 사람으로서 무사히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여 나온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공지영(이하 공)아빠스님이 아니었으면 소설 쓰는 데 무척 애를 먹었을 것이다. 금녀 구역인 남자 수도원의 일상과 젊은 수도사들의 고민 같은 걸 아빠스님의 도움 덕분에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포도주를 몰래 챙겨 먹는 모습이라든가 자전거 소풍, 스타시오(기도에 앞서 성당 복도 앞에 줄을 서는 일) 전통 같은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왜관역에서 기차를 내리지 못한 일화 같은 건 아빠스님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녹여 넣었다. 소설 주인공인 정요한 수사가 아빠스님과 비슷한 감성의 소유자인데, 어떻게 보면 아빠스님이 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하다. 연재 당시에는 수련원장으로서 젊은 수도자들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는데, 연재 도중 아빠스로 선출되셨다. 늦었지만 다시한번 축하 드린다.

공 나는 사실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고 나라 안팎의 여러 수도원을 많이 다녀 봤다. 수도원은 대개 엄격한 규율이 다스리는 곳인데, 왜관 수도원에 처음 와서 놀랐던 건 너무도 자유롭고 편안했다는 것이다. 여기 들어와 살고 싶을 정도였다.
박젊은 청년들이 1박2일 일정으로 수도원으로 기도 모임을 오는데, 그 모임에 참가하는 여대생이나 직장인들도 그런 말을 하더다. 여성이니까 수녀원이 좋지 않겠냐고 하면, 수녀원은 싫고 여기가 좋다고들 말하곤 한다.(웃음)
공물론 엄연히 수도원이니까 나름대로 규율에 따라 움직이겠지만, 상당한 자율성이 느껴졌다. 세상과 다른 특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도 생활은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다들 기쁘게 살고 있다. 특히 왜관 수도원은 140명의 대 식구로 분도출판사와 피정의 집, 순심교육재단, 금속공예실, 목공예실, 유리화공예실, 분도식품, 분도노인마을, 구미가톨릭근로자 문화센터, 농장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공베네닉도 수도원의 모토가 ‘기도하며 일하라’인데, 그 점이 놀랍고 매력적이었다. 기부에 의존하는 여느 수도원들과 달리 공장과 일터를 세우고 무언가를 생산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게 이 수도원의 힘인 것 같았다.
박‘기도하며 일하라’는 모토에 따라 살자면 생활이 지극히 단순해진다. 수도자는 가난하고 단순할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명징해진다. 만약 수도자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끈이 많다면 이런저런 제약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베네딕도회의 1500년 전통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세상 사람들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공확실히 소유가 적으면 생각이 반듯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베네딕도 수도원의 삶이야말로 좋은 의미에서 공산주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는 게 이곳 같더라. 평생 기도하고 노동하다가 늙고 병든 수사님들을 끝까지 아름답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박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이들이 아마도 우리 회의 생활 모습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공내 소설에서 미카엘 수사는 기성 교회의 타락과 무책임을 비판하며 사회 정의를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수도자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높은데, 그에 관해 쓰면서 나부터가 가톨릭 신자로서 후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그의 입을 빌려서 한 셈이랄까.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가톨릭 교회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판도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편에 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그런 희망이 헛되지 않다는 걸 알게 한다.
공이 소설은 사실 전쟁 당시 흥남에서 피난민 1만4천명을 배에 태워 거제도까지 기적적으로 항해를 마친 뒤 베네딕도회에 입회했던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리너스 수사가 평생 봉직했던 미국 뉴저지 뉴튼 수도원을 왜관 수도원이 인수했기 때문에 왜관 수도원을 소설 무대로 삼은 것인데, 취재하다 보니 독일에서 비롯된 이 수도원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헤쳐 온 곳이더라.
박그렇다. 1909년 독일 신부 두 분이 서울 혜화동에 남자 수도원을 설립한 뒤 함경도 원산 덕원으로 옮겼다가 전쟁 뒤 왜관에 자리잡은 게 우리 수도원이다. 70년대에는 얼마 전 선종하신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가 사장을 맡은 분도출판사에서 해방신학 계열 책들을 출간했고 5·18 민중항쟁 뒤에는 ‘광주 비디오’를 처음 튼 곳도 베네딕도회였다.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대구 대명동 성당에서 전경들이 바깥에 도열해 있는 가운데 광주 비디오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공연애와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하느님을 향해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정요한 수사의 모습에는 사실 나 자신의 신앙적 갈등이 들어 있다. 주인공이 가톨릭 수사이기는 하지만 신앙이 없는 분들 역시 ‘하늘이시여, 도대체 내게 왜?’라는 질문을 한번쯤은 해 볼 것이다. 승려를 주인공 삼은 김성동 선생의 <만다라>를 내가 감동적으로 읽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박이 소설을 읽고 수도자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면 좋겠지만,(웃음) 반드시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수도원을 많은 분들이 편하게 찾아 주시면 고맙겠다.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고 베네딕도 성인은 말씀하셨다. 성당은 늘 개방돼 있고 주일 오전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로 미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도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피정의 집은 전화로 신청이 가능하다.
공제 책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지리산에 찾아오신다고 들었다. 여기는 수도원이니까, 오시더라도 최소한의 예의와 절차는 지켜 주신다면 고맙겠다. 아니면 내가 아빠스님과 수도원에 죄송하니까.(웃음)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