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가에게 묻다
김효순 지음/서해문집ㆍ1만7000원
‘조중동’은 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위대한 영도자’로 띄우는 걸까?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망언이 뉴라이트 진영과 일본 쪽에서 나오는 걸까?
<역사가에게 묻다>는 야마다 쇼지, 강덕상, 미야타 세쓰코, 조동걸, 하야시 에이다이, 김광열, 우쓰미 아이코, 히다 유이치 등 8명의 역사학자와 인터뷰를 통해 굴절된 한일 현대사의 뿌리를 찾아간다. 조동걸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인 또는 재일동포 학자들이다. 이들을 잘 몰라도 자책하지 마시라. 입말로 된 인터뷰를 따라가다보면 인터뷰이들이 친근해지고 지은이가 심혈을 기울여 취재해 덧붙인 ‘장면’들과 함께 한일 현대사 속으로 절로 빠져든다.
지은이는 <한겨레>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내고 2007년부터는 취재현장으로 돌아가 활동하는 김효순 대기자. 2009년에는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라는 저서를 통해 시베리아에 억류됐다 풀려난 조선인 일본군의 기구한 삶을 추적한 바 있다. 그들의 삶은 강제로 끌고갔던 일본에서도, 소련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한 남한에서도 외면하는 사각지대였다. <역사가에게 묻다> 역시 그렇다.
책을 읽기에 앞서 지은이가 다 안다치고 들어가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2차 세계대전 직후 형성된 미-소 냉전체제. 미국은 대공 방파제를 치기 위해 한반도 남쪽에 이승만 정권, 일본에 자민당 체제를 구축한 뒤 ‘한일협정’으로써 두 나라의 앙숙관계를 봉합했다. 이에 앞서 도쿄 군사재판에서는 일본의 조선 지배 죄과를 면죄해줬다. 서울에서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친일세력을 대거 기용하는 정지작업이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학자들은 60~80대 고령. 한일 현대사가 연구대상으로조차 취급받지 못했던 초기 학계 풍토, 태우고 감추고 방치하면서 인멸되어가는 자료들, 시퍼렇게 살아있는 관련자들이 둘러친 벽 앞에서 활동가를 겸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지은이의 시선은 연구자들의 증언에서 나오는 희생자들한테로 옮겨간다. 조각조각 흩어진 자료들과 현장확인을 거쳐 한-일 틈새에서 억울하게 B·C급 전범으로 몰린 조선인, 남-북한 틈새에서 사라진 조선인 운동가 등 수많은 인물이 되살려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이는 가쿠슈인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제 강점기 자료정리에 매달려온 미야타 세쓰코(76).
대학 4학년 때인 1957년 졸업논문의 주제를 3·1운동으로 정하고 주임교수한테 말하니, 그는 도리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도쿄 국립도서관에서 ‘만세소동’, ‘만세소요’를 주제어로 자료를 찾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 교수의 귀띔을 받고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 모이는 클럽인 ‘우방협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검은 보자기에 싸여 구석에 방치된 ‘사카타니 문서’를 찾게 된다. 그 문서는 1919년 ‘대일본평화협회’ 부회장으로 있던 사카타니 요시로가 외국인 선교사들이 일본의 탄압 실태를 외부에 알리자 대처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모은 만세소요 관련 자료다. 졸업 뒤 고맙다는 인사차 우방협회에 다시 들른 미야타는 총독부 식산국장을 지낸 호즈미 신로쿠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한 어떤 비판도 들을 귀를 갖고 있지만,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거나 사실과 다른 것을 지적하는 것은 승복할 수 없다”며 관련자료를 함께 모으자고 제안한다. 그로부터 학생들과 협회 관계자들이 모여 오월동주 격인 ‘조선근대사료연구회’가 발족된다. 호즈미는 학생들이 어떤 사안이나 분야를 알고 싶다고 하면 그것을 담당했던 사람을 바로 불러왔다. 그렇게 증언한 사람이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을 지낸 세 사람을 비롯해 거의 120명이었다. 모임은 500회 정도 계속됐고 모든 과정은 녹음됐다. 현재 녹음테이프는 가쿠슈인대학에 보관돼 있다. 재야에 있으면 자유롭게 발언하고 연구할 수 있어 좋다며 대학교수직을 사양한 미야타는 2020년 그의 나이 85살까지 완성한다는 목표로 방대한 녹음을 풀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국내 학계로 시선을 돌리면 신산하기 그지 없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던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1973년 독립군전투사에 김일성을 다루었다고 누군가 밀고한 바람에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끌려간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함께 일하던 홍이섭, 이강훈 선생도 불려갔다가 편찬위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나중에 복직되기는 했지만.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어느 연구서도 접근하지 못한 심층적인 탐구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실을 기록했다”며 “앞으로 한일관계 연구가 깊어질 때 후학들이 무척 긴요하게 참고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서해문집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