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야아~옹!” 오늘도 고양이 때문에 기가 차서 피식 웃고 말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정(情)이 존재하던 시절의, 이제는 레트로가 된 광고 속 노래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양이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눈빛, 해맑은 눈동자는 그 자체로 암호 같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소통엔 불편하지만, 말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또다시 구구절절 늘어놔야 하는 피곤함은 없겠네요. 어쩌면 반려동물과 인간은 서로의 언어를 모르기에 그들과 있으면 힐링이 되고 덜 피곤한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우리가 서로의 말을 이해한다면, 야속하고 힘든 일이 많아지려나요? 고양이가 뭐라 하든, 용서해줘야죠, 귀여우니까요.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 본능적으로 눈길이 머물렀어요. 미식축구 경기장의 초록 잔디 위에 펼쳐진 무대는 풀숲과 수풀 의상을 입은 수백명의 사람들로 채워졌어요. 그야말로 초록 잔디 위의 초록 무대였지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미국 가수 배드 버니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노래했어요. 가사의 내용이 무엇이었든, 신명 나는 남미 리듬 위에서 툭툭 내뱉는 듯한 창법으로 세련되게 연출한 힙합은 그 자체로 강렬했어요. 가수의 음성은 음악 안에서 멋지게 블렌딩되고 가수가 내뱉는 맛깔난 스페인어는 그 자체가 악기 소리처럼 들리고 있었어요. 만약 스페인어 가사를 이해했다면 온전히 음악에 빠질 수 없었을 거예요. 가사가 있는 노래는 가사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지만(심지어 한국어 가사도), 가사가 없으면 온전히 그 음악적 언어에 더 잘 몰입하게 돼요.
클래식에는 가사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기악곡’이 성악곡보다 많은데요. 클래식의 특징이기도 하죠. 가사가 없지만 마치 노래처럼 들리는 음악을 ‘무언가’(無言歌, Songs Without Words)라고 해요. 주로 피아노 독주곡. 노래처럼 선율이 강조되고 반주부가 분명히 느껴지는데 가사가 없는 거죠.
“음악에 언어는 불필요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무언가는 실은 시와 소설 등 문학적 언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낭만 시대에 탄생했어요. 바로 펠릭스 멘델스존이 무언가를 만든 주인공이에요. 친구였던 로베르트 슈만은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19세기의 모차르트”에 비유했어요. “가사 없는 노래”라는 문학적인 표현이야말로 천재 멘델스존의 머리에서 나옴 직한 독창적인 발명품이에요.
멘델스존은 19살에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의 생일 선물로 무언가를 최초로 작곡해 선물해요. 하나의 장르로서 무언가가 최초로 탄생한 순간! 그때부터 15년간 48곡의 무언가를 작곡해 6곡씩 8권으로 출판해요. 이 중 제5권을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하는데, 제5권의 6번째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봄노래’예요.
35살의 멘델스존의 창작력은 대단했어요. 이제 막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하고는 5회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해 영국 런던에 머물러요. 벌써 8번째 방문으로, 멘델스존은 런던 교외에 머물며 초록빛 봄의 정취를 무언가 ‘봄노래’에 담아내요.

‘봄노래’는 가사 없이 피아노만으로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상큼하게 터지는 푸른 새싹, 화창하고 맑은 하늘 위의 새하얀 구름 등 머릿속에 온갖 좋은 것들을 가득 떠올리게 하는 곡이에요.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로 경쾌하고 우아하게, 피아노가 양손으로 표현하는 아르페지오(펼침화음)의 장식음은 봄의 꽃씨가 바람에 날리고, 알록달록 나비들이 초록으로 가득한 풀밭을 훨훨 날아오르는 듯해요. 어쩐지 꽃향기도 나는 듯. 바로 멘델스존의 매혹적인 선율 덕분이지요. 한편으론, 문학을 사랑한 멘델스존이 무언가로 언어와 음악의 관계를 사고하게 하는 것도 같아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 곧잘 인용되는 이 문장은 ‘언어는 그것만으로 불완전하기에, 그 부족함이 시작되는 곳에서 음악이 충족해준다’는 의미예요. 즉, ‘언어는 그 표현의 한계점이 존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때부터 음악이 나선다’로 해석돼요. 재밌는 건, 이 인용구가 정작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요.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 모차르트, 작가인 에른스트 호프만,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거론되죠. 멘델스존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아니에요. 일리 있고 타당한 발언이라 많은 지식인이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합니다. 다만, 음악이 언어보다 완전하다는 말을 만약 음악가가 했다면 많은 문인과 끝도 없는 말싸움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오히려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한 문학가가 문장의 한계를 느끼고 한 말이 아닐까요? 짐작건대 당대 음악인들과 교류한 시인 하이네 또는 호프만이 유력합니다. 아니,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를 바라게 되네요.
가사가 없으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음악 그 자체의 매력에 빠지게 되죠. 언어가 두 손 두 발을 들고 항복을 선언하면, 음악이 나서서 마무리하는 것. 그런데 멘델스존의 ‘봄노래’에 굳이 가사를 붙여버린 장난꾸러기가 있어요. 20세기 초, 미국의 송라이터가 가사가 없는 봄노래를 정말 노래로 바꿔버려요. 제목은 ‘매혹적인 멘델스존의 선율’.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고양이가 키보드 위에 앉아버려요. 집사가 애용하는 물건은 고양이 눈에도 소중해 보여서 애지중지하는 거랍니다. 고양이는 집사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네요. 아직은 울음소리나 행동으로 동물의 시그널 체계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누군가(AI도 포함) 그것을 언어로 해독해낸다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겠죠.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동물과 교감하다 보면 묘한 감정적 동요가 생기기도 해요. 말보다 행동이, 그리고 눈빛이 사랑을 증명하기도 하죠. 간혹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싶을 때, 음악의 힘을 빌려보세요. 고양이 언어는 ‘유구무언가’(有口無言歌) 정도 되려나요?
참,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는데 그 사랑이 진짜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그럴 때, 음악이 나선답니다. 다음에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작곡한, 가사 없는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올게요. 멘델스존의 ‘봄노래’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1946년 콘서트 실황으로 들어보세요. 가사는 없지만, 젊은 봄의 상큼함이 호로비츠의 경쾌한 왼손과 찐득한 오른손에서 전해질 거예요.

안인모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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