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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중구 성남동 시계탑 위에 증기기관차를 본뜬 모형 기차가 5년째 멈춰 있다. 주성미 기자
울산시 중구 성남동 시계탑 위에 증기기관차를 본뜬 모형 기차가 5년째 멈춰 있다. 주성미 기자

울산시 중구 원도심 대표 상징물인 ‘시계탑’에 모형 기차가 5년째 멈춰 있다.

울산 최초의 철도역이 있던 장소를 강조하며 10년 전 만든 것인데, 잦은 고장으로 골칫거리가 됐다. 중구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수억원을 들여 새 모형을 제작하기로 했다.

7일 오전 11시 정각. 울산시 중구 성남동 시계탑 위 증기기관차를 본뜬 주황색 모형 기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리는 시내버스와 승용차 소음으로 가득 찼다. 일대를 오가는 누구도 고개를 들어 시계탑 위쪽을 보지 않았다. 시계 아래 ‘시계탑 칙칙폭폭 기차 소리 매시 정각’이란 글귀만 이곳에서 정시마다 벌어졌을 일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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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울산라이온스클럽이 중구 성남동에 세워 울산시에 기부한 최초의 시계탑. 울산시 제공
1966년 울산라이온스클럽이 중구 성남동에 세워 울산시에 기부한 최초의 시계탑. 울산시 제공

시계탑은 울산 원도심 중구 성남동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1966년 울산라이온스클럽이 만들어 울산시에 기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시계가 귀한 시절 시내 중심가에 세워진 커다란 시계탑은 만남의 장소였다. 점차 시계가 흔해지고, 시내 교통량이 늘면서 시계탑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잇따랐다. 결국 11년 만인 1977년 최초의 시계탑은 철거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시계탑사거리’로 불렀다.

1998년 울산시 중구 성남동에 복원된 시계탑. 울산시 제공
1998년 울산시 중구 성남동에 복원된 시계탑. 울산시 제공

시간이 흘러 울산 중심 상권은 중구 성남동에서 남구 삼산동으로 옮겨갔다. 중구는 1998년 상권을 살려 옛 명성을 되찾겠다며 14억5천여만원을 들여 시계탑을 복원했다. 높이 10m, 지름 25m, 무게 40톤에 이르는 왕관 모양으로 사거리를 모두 에워싸는 형태로, 시계와 전광판을 걸고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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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중구는 시계탑에 역사성을 담겠다며 9억4800만원을 들여 새로 꾸몄다. 1921년 개통한 울산 최초의 철도역인 경동선 울산역이 중구 성남동에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철도역 분위기를 낸다며 시계탑 위에 둥그런 지붕을 얹고 로마 숫자가 적힌 시계 4개를 사방에 내걸었다. 6량짜리 모형 기차도 이때 생겼다. 정각마다 소리를 내며 시계탑을 한바퀴 달리도록 만들었다. 애초 3억원이던 사업비는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모형 기차만 1억5500만원짜리였다.

울산시 중구 성남동 시계탑 기둥의 안내문(오른쪽)에 1921년 개통된 경동선 울산역의 시기가 1912년으로 잘못 적혀 있다. 왼쪽 사진은 직선거리 약 300m 떨어진 ‘경동선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의 안내문. 주성미 기자
울산시 중구 성남동 시계탑 기둥의 안내문(오른쪽)에 1921년 개통된 경동선 울산역의 시기가 1912년으로 잘못 적혀 있다. 왼쪽 사진은 직선거리 약 300m 떨어진 ‘경동선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의 안내문. 주성미 기자

중구는 시계탑 기둥에 ‘중구 부활의 신호탄으로 오늘도 매시간 기적을 울리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비바람에 노출된 모형 기차는 이듬해인 2016년부터 삐걱거렸다. 2018년 11월 중구는 5400만원을 들여 수개월 동안 작동을 멈춘 모형 기차를 고쳤다. 도색도 새로 했다. 하지만 모형 기차는 2020년 9월 또다시 멈췄다. 수리 비용은 최초 구입비를 훨씬 웃돌았다. 그마저도 납품업체가 현실적으로 고치기 힘들다는 입장을 중구에 전했다고 한다. 모형 기차는 5년 동안 그대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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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김영길 울산 중구청장(맨 왼쪽)이 시계탑의 고장 난 모형 열차를 살펴보고 있다. 중구 제공
지난해 12월 김영길 울산 중구청장(맨 왼쪽)이 시계탑의 고장 난 모형 열차를 살펴보고 있다. 중구 제공

김영길 중구청장은 4억5천만원을 들여 모형 기차를 새로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연기 효과나 조명, 음향도 다시 정비하기로 했다. 다음달 중 업체를 선정해 내년 4월 말 열차를 재운행하는 게 목표다.

잦은 고장의 원인으로 꼽힌 야외 운행 조건은 그대로다.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지만, 중구는 막연한 기대만 내비친다. 중구는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에 ‘야외 환경에 장기간 견딜 수 있는 견고성과 내구성, 구조적인 안전성, 하·동절기의 온도와 강수, 강설 등의 외부 요인에 의해 형태나 색채가 변화하지 않도록 제작해야 한다’고만 적었다.

중구 관계자는 “제작 기술이 과거보다 좋아졌을 거라 기대한다”며 “비바람에 강한 소재를 사용하고, 철로를 보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시계탑의 모형 열차는 잦은 고장으로 예산 낭비 논란이 꾸준히 제기된 사업이다. 그런데도 중구가 별다른 대책 없이 기존의 3배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재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