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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 2층의 배터리팩에서 최초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4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리튬 배터리 공장 2층의 배터리팩에서 최초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일용직이라 차별받고, 외국인이라 소외됐다. 불타는 공장 안, 누구도 그들에게 살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둡고 숨 쉬기조차 힘든 공장 2층에서 불길을 피해 몰려간 곳이 하필이면 숨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밀폐 공간이었다. 운 좋은 동료들이 가까스로 화마를 피해 숨을 돌릴 때, 공장이 낯설었던 이들은 극한의 공포와 고통 속에 숨이 멎었다. 

23명의 사망자를 낸 화성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 화재 참사는 감추고 싶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싸고, 쉽게 대체할 수 있으며, 관리 비용도 저렴한 이방의 존재들이 선진 산업국가 대한민국의 밑바닥 노동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고용에서도 안전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각에 있었다.

“안전 점검을 주기적으로 받았고, (현장에) 금속(화재)용 분말소화기도 비치돼 있었다.” 불이 난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가 25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날 확보한 화재 발생 건물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보면, 배터리 폭발이 일어난 직후 일부 직원이 비치된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하지만 불길은 추가 폭발과 함께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리튬 화재의 초기 진화에 필수적인 특수 장비가 부족하거나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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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직원이 분말소화기를 이용해 리튬 배터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시도하고 있다.
일부 직원이 분말소화기를 이용해 리튬 배터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시도하고 있다.

박 대표는 “화재를 알리는 경보장치와 진압장치인 소화기, 탈출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대피 매뉴얼 등을 갖췄다”고도 했다. 하지만 영상에 잡힌 발화 당시 직원들의 행동을 보면, 처음 연기가 피어오르고 1·2차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손으로 배터리를 옮기려고 시도하고, 연쇄 폭발이 시작됐는데도 분말소화기로 불을 끄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리튬 화재 대처 요령을 전혀 숙지하지 못한 모습이다. 영상을 본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초기에 소화가 안 되면 바로 현장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무리하게 계속 진화를 시도한다. 게다가 작업공간 내 적치물 때문에 대피로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아 보인다”고 했다.

공장 작업자의 다수가 장기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외국인인 상황에서 재난 상황에 대비한 교육·훈련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앞서 이 공장 중간관리자 이아무개씨는 24일 화재 직후 “회사가 분기에 한번 화재 대피 훈련을 실시했고, 위험 물질인 리튬을 다루는 만큼 안전을 위한 사전 교육을 상시적으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씨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파견업체에 고용된 채 회사 요청에 따라 그때그때 작업 과정에 투입되는 일용직들이 분기별 대피 훈련이나 수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엔 파견노동자의 교육·훈련에 소요되는 시간 자체가 ‘돈’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았더라도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들 처지에선 교육 내용 숙지도 쉽지 않았으리라고 보는 게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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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폭발이 이어지며 2층 전체에 짙은 연기가 가득 차고 있다.
추가 폭발이 이어지며 2층 전체에 짙은 연기가 가득 차고 있다.

실제 이들을 고용한 파견업체 관계자는 “인터넷에 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 가운데 적당한 사람을 뽑아 통근버스를 태워 (아리셀로) 보낸다. 거기서 요청하는 것에 따라 보내기 때문에 (고용 형태는) 그때그때 다르다”고 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23명 가운데 외국인은 중국인이 17명, 라오스인이 1명이었다. 이들의 모두 파견업체에 소속된 일용직이었다. 성별로는 남자가 8명, 여자가 15명이다.

이승욱 이정하 기민도 기자 seugwook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