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몇 조각의 나뭇잎이 달려있어 바람에 흔들리지만 오늘, 내일이 지나면 더는 이런 풍경은 없다. 절기로 때를 알기도 어렵지만 단어 하나만으로 계절을 가늠하기는 더욱 힘든 일. 내일(7일)은 입동. 겨울을 피부로 느낄 만큼 춥진 않지만 물이 얼고 땅이 얼어붙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린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시작해 지루하고 긴 장마와 태풍 재난까지 3박자가 아주 난리를 쳤다. 시름과 불안으로 세월을 놓쳐 예쁜 꽃, 아름다운 나비를 즐기지도 못하고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숲만 바라본다. 마르고 찬바람 불어 스산하지만 손녀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코끝을 스치는 상큼한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살과 근육을 키워 통통해진 멸종위기종 금개구리가 땅을 파고 낮게 숨을 쉬며 겨울 날 준비를 한다. 포근하게 감싼 알집 속에 사마귀가 월동을 시작했고, 유리산누에나방도 알 상태로 겨울을 맞아 이미 휴면에 들어갔다. 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하지만 겨울은 예상 밖의 변수가 많아 많은 개체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는다. 온대지역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겪는 가장 가혹한 시련, 겨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즈음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그래도 작년까지만 해도 밀려오는 한파만 준비하면 됐는데 올해부터는 사뭇 다르다. 겨울 저온에서 생존력·전파력이 강한 무서운 놈들, 코로나바이러스를 대비해야 한다는 심란한 기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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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아직도 말벌이
한창 곤충들의 월동 준비로 바쁜데 ‘아얏’ 하며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호랑이도 늑대도 사라진 산속이라 특별히 무서워하며 피할 것은 말벌밖에 없는데 이미 겨울이라 그냥 무심히 일하다가 말벌에 쏘였다.
“계절을 모르는 철없는 놈의 소행이겠거니.” 그래서 별 독이 없을 것이라며 보건소도 안 가고 하루 지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딱 한 방 쏘였는데 다리 전체가 퉁퉁 부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계절은 이미 겨울로 가고 있는데 더디 세월을 먹는 ‘벌’이라니. 서둘러 겨울 준비를 하던 모든 일이 머쓱해진다. 그냥 무심히 보다가 적막하고 황량한 줄로만 알았던 겨울 숲은 아직 생명 활동이 진행 중이었다.

‘킬러 말벌’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미국을 발칵 뒤집은 장수말벌부터 도심 속 말벌 피해까지 많은 사람이 말벌에 대해 궁금하다. 진짜 위험한지, 어떻게 하면 안 만날 수 있는지 혹여 맞닥뜨리면 어떻게 처신할지, 정말 해만 끼치는 나쁜 놈들인지? 얼마 전 ‘한국방송(KBS)’의 생생정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몇몇 중요한 대목이 빠져 말벌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육상 포유류의 호랑이, 물속 생태계의 물장군 그리고 육상 곤충 생태계의 말벌은 모두 그 분야에선 가장 힘센 놈들, 최상위 포식자이다. 말매미, 말벌의 ‘말’은 크다는 뜻으로 말매미는 매미 중 덩치가 제일 크고 소리 역시 가장 시끄러워 한여름 밤 도심 속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소음의 주범이다. 말벌도 이름값 하며 벌 종류 중 가장 크고 맹독성 독침을 가진 놈들이다.


검은 몸빛에 샛노란 줄무늬를 가진 말벌의 선명한 색채 패턴을 이르는 ‘옐로 재킷’이라는 단어는 공포의 대상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공격성이 높은 날카로운 턱과 독침을 보면 무시무시하며 큰 무리를 지어 사니 더욱 무섭다.
대표적인 경계색과 강력한 독성 무기를 갖고 있고 무리 지어 살면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므로 말벌은 모든 종류의 곤충이 열심히 닮으려는 의태의 모델이다. 하늘소도, 파리, 나방까지도 모두 닮고 싶어 한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있으며 실제로 의태 패턴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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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피하라
말벌은 피하는 게 상책이므로 그놈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게 좋다. 말벌의 대표적인 천적은 담비나 곰 같은 동물이다. 보통 동물은 천적을 만나면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워낙 공격적인 말벌이다 보니 오히려 천적의 색깔인 검은색이나 갈색 옷을 입으면 달려든다. 검은 계통의 옷보다는 밝은색 옷을 입는 편이 유리하다.
말벌은 굉장히 텃세가 강하고 자기 집 주변에 얼씬거리면 무엇이든 공격하므로 말벌을 만났을 때는 빨리 도망가야 한다. 텃세 영역이 보통 20m~30m라고 하니까 최소한 그 정도 거리까지는 벗어나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말벌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멀리 도망간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등검은말벌도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래종으로 특별한 천적이 없고, 세력도 말벌 중 가장 커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대발생 중이다. 봉군(벌 떼)이 크므로 공격성이 강하고 도심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게다가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덕으로, 봄에 일찍 나오고 가을 늦게까지 활동을 하면서 활동 시간도 다른 말벌에 비해 길어, 양봉 산업에 해를 끼치거나 사람을 쏘아 위험에 빠트릴 빈도가 가장 잦다.


생태계 조절자 구실
사람을 공격하는 살인 말벌의 공격성과 양봉 농가의 꿀벌을 몰살할 수 있는 해충으로 지탄받지만 생태계 조절 기능자로서의 말벌의 역할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몇몇 꿀벌만 먹어서는 양이 적어 생존과 번식이 힘들고, 사람 쏘는 행위는 자기를 지키고자 함이니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엄청난 해충은 아니다.
말벌은 잡식성으로 다른 벌뿐 아니라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 모기나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꽃매미를 비롯한 외래해충 등 거의 모든 곤충을 잡아먹으며 밀도를 조절해준다. 사체를 분해하는 청소동물 노릇도 하며 꿀벌처럼 꽃에서 꿀을 섭취하며 꽃가루받이도 해 준다.
해충 포식자로, 정화 곤충으로 또 수분 매개 곤충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멀티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유용한 곤충임을 알면 공포감이 좀 줄어들까?
그래도 말벌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말벌 동영상(홀로세 곤충방송국 HIB 제공)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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